지난해 5월 열린 미국 PGA 챔피언십은 만 50세 11개월의 나이로 PGA 메이저대회 최고령 우승을 따낸 필 미켈슨과 함께 거리측정기를 허용한 최초의 대회라는 점이 큰 화제를 모았다. 미국프로골프협회가 지난해 경기 속도 향상의 목적으로 3개의 프로 대회에 거리측정기를 허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PGA 챔피언십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 대회에서 실제 거리측정기를 사용한 선수는 없었다. 필 미켈슨 역시 자신의 감각과 캐디의 도움으로만 우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거리측정기를 프로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손바닥 크기의 작은 기기가 가지는 위상은 그 이전과 비교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전국 각지의 골프장에서는 거리측정기가 하나의 필수용품이 됐다. 아마추어 동호인 허리춤에 작은 가방 하나씩 달린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1명의 캐디가 골퍼 4명을 도맡아야 하는 국내 골프 환경상, 거리나 해저드, 벙커 등의 트러블을 피해 갈 수 있는 거리측정기의 장점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골프 클럽만큼 중요한 것이 거리측정기라는 말이 나온다.
거리측정기는 위성항법시스템(GPS)을 활용한 것과 레이저를 이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GPS는 스마트 기기 등과 연동돼 스마트폰, 스마트워치로 자신의 위치와 핀까지의 거리를 알려준다. 다만 오차 범위가 큰 편이고, 코스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알지 못한다.
레이저 거리측정기는 본래 군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레이저의 송수신 시간을 측정해 거리를 잰다. 원하는 곳을 조준만 하면 실측 거리가 나오고, 별도의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사용이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최근에는 온도와 고저차까지 측정해 알려준다.
최근 니콘이 레이저 거리측정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랜 시간 광학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니콘은 산업용 거리측정기 시장에서도 나름 잔뼈가 굵은데, 덕분에 빠르게 골프 분야에서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니콘이 지난해 출시한 쿨샷 프로2 스태빌라이저는 망원렌즈나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등에 들어간 '손떨림방지' 기능을 특징으로 한다. 쿨샷 프로2 스태빌라이저를 실제 골프장에서 사용해 봤다.
제품의 외관은 깔끔하다. 마치 컴팩트 카메라를 보는 느낌이다. 흰색 바탕에 푸른색 포인트 컬러가 눈에 들어온다. 손이 닿는 부분은 검은 고무 마감이 이뤄졌다. 전면에는 두개의 렌즈가, 후면에는 하나의 렌즈가 위치한다. 상단은 망원경의 역할을 하단 렌즈에서는 거리 측정을 위한 레이저가 발사된다.
무게는 180g. 경쟁 제품에 비해서 가벼운 수준이다. 유선형의 몸체는 손에 잡기도 편하다. 전원은 내장형 배터리가 아닌 CR2 리튬 건전지(1개)를 사용한다. 잔량은 내부 표시창에 나타난다. 기본품에는 휴대용 파우치가 포함된다.
제품 윗면에는 '모드'와 '파워온' 두개의 버튼이 위치한다. 쿨샷 프로2는 4가지의 측정 모드를 제공하는데, 모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측정 및 표시방식이 달라진다. 직선거리와 지형의 높낮이를 반영한 거리를 함께 표시하는 'G모드', 직선거리만 표시하는 'D모드', 직선거리와 높이만 보여주는 'A모드', 수평거리와 높이를 표시하는 'H모드'가 있다. 아마추어는 G모드가 가장 적당하다. 알아서 코스 높낮이에 따른 거리를 알려줘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산악 지형에 골프장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필요한 기능이 아닐까 싶다. 고저차 측정을 하지 않아야 하는 프로 선수들은 D모드를 쓴다. 이 경우 제품 외관에 녹색불이 들어온다.
눈에 대고 파워온 버튼을 누르면 피사체까지의 거리를 잰다. 렌즈를 통해 꽤 선명하게 전방의 상황 등이 보인다. 거리를 알고 싶은 물체를 지정한 뒤 버튼을 누르면, 약 0.3초 만에 초록색 표시와 거리, '띠리리'하는 전자음이 함께 나타난다. 정확하게 목표물을 찍었다는 '락온' 기능이다.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골프 초보자인 골린이(골프+어린이)에게 거리측정기는 다소 사치라는 고수들의 얘기도 있다. 정확한 자세로 샷도 하지 못하는 초보자에게 거리측정기는 쓸모가 없는 기기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티박스에 서서 거리측정기를 아무리 눌러대봤자 자신이 원하는 위치와 거리로 공을 보내는 건 실제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고수들 말대로 거리측정기 들고 버튼 누르고,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할 시간에 연습 스윙을 한번 더 하는 것이 초보자에게는 더 유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골린이에게 거리측정기가 가장 필요한 순간은 세컨드 샷과 어프로치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숱하게 연습장에서 휘둘렀던 7번 아이언에 거리측정기는 정교함을 더해주는 무기가 된다. 필드에서 본인의 클럽 비거리를 정립해 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린 근처 러프에서 잔뜩 들어가는 힘으로 핀을 한참 넘겨 공을 날리는 일은 거리측정기와 함께라면 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대다수의 골프용품이 그런 것처럼 59만원에 달하는 가격이 부담이다.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시중에는 10만원대, 20만원대 제품도 많이 나와 있다. 또 이 분야 1위 브랜드를 카피한 '차쉬넬(차이나+부쉬넬)'이라는 제품도 10만원 이하에 구매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니콘을 사야한다면 카메라 분야에서의 브랜드 신뢰도를 꼽고 싶다. 렌즈가 들어간 건 기가막히게 잘 만든다는 그런 믿음이 있는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