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MX사업부(모바일경험·옛 무선사업부)의 폴더블(접히는)폰 대중화 선언을 바라보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속이 쓰리다. 최고가 제품에 성능 문제로 자체 개발 모바일 칩 엑시노스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퀄컴 칩 생산까지 업계 경쟁사인 대만 TSMC에 빼앗겨서다. 시스템반도체 전략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17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회사 최고가 스마트폰이자, 폴더블폰 시장 선구자인 갤럭시Z 시리즈는 2019년 첫 출시부터 퀄컴의 모바일 칩만 채용해 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고급 스마트폰에 자체 개발 모바일 칩 ‘엑시노스’를 장착했던 것과 다른 행보인 것이다. 최신 시리즈인 갤럭시Z폴드4와 플립4에도 퀄컴 최신 모바일 칩 스냅드래곤8+(플러스) 1세대만 넣는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이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플립4'와 '갤럭시Z폴드4'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스냅드래곤 단독 적용의 배경은 ‘성능’이다. 첫 폴더블폰에 채용된 스냅드래곤 855의 경우 당시 ‘경쟁 칩이 없다’고 할 정도로 좋은 성능을 내고 있었다. 삼성 파운드리 8㎚(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으로 만들어지던 엑시노스 9820과 달리, 삼성 파운드리 7㎚ 공정을 채택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애초 삼성전자가 갤럭시Z 시리즈를 시범 제품 성격으로 내놓은 것도 퀄컴칩 단독 적용의 이유로 작용한다. 당시 수직 계열화의 이점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첫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의 경우 판매 목표가 연간 100만대 수준이었는데, 이는 갤럭시S10의 연간 예상 출하량인 4000만대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성능이 거의 대등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최신 세대 칩에서도 엑시노스는 번번이 갤럭시Z 시리즈에서 낙방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Z플립3의 경우 갤럭시S21에 들어갔던 엑시노스 2100의 채용 가능성이 커졌지만, 최종적으로 경쟁 제품인 스냅드래곤 888만 장착됐다. 이 때문에 같은 세대 칩에서는 여전히 스냅드래곤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업계 얘기가 나왔다.

과거 갤럭시에 사용되는 퀄컴 스냅드래곤이나 삼성 엑시노스는 모두 삼성 파운드리가 맡았다. 그러나 갤럭시Z 폴드4와 플립4에 채택된 최신 세대 칩인 스냅드래곤8+ 1세대는 대만 TSMC가 생산을 전담하는 것으로 생산처를 옮겼다. 삼성 파운드리 4㎚ 공정으로 생산한 스냅드래곤8 1세대가 수율과 성능 문제를 동시에 겪은 탓이다. 갤럭시S22에 퀄컴 칩과 함께 장착됐던 엑시노스 2200 역시 동일한 문제가 있었다. 특히 칩이 가동할 때 발생하는 열이 과도해, 칩 성능을 임의로 줄이는 ‘GOS(게임옵티마이징서비스)’ 기능이 큰 논란을 빚었고, 삼성전자는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엑시노스 2200. /삼성전자 제공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 갤럭시Z폴드4와 플립4는 올해 900만대 출하가 전망된다. 전작 Z폴드3와 플립3를 포함해 앞서 출시된 모든 갤럭시Z시리즈의 지난해 판매량 800만대를 웃도는 것이다. 삼성전자 자체적으로는 1000만대 판매도 내다보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로서는 1000만개 이상의 칩 생산을 TSMC에 빼앗긴 것이다. 5㎚ 이하 미세공정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TSMC의 손을 삼성 MX사업부가 들어준 셈이다. 엑시노스를 설계한 삼성 시스템LSI, 스냅드래곤을 생산해 온 삼성 파운드리 모두 탐탁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 내부의 아쉬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TSMC 생산 퀄컴 칩에 대한 삼성 MX사업부의 기대는 큰 편이다. 신제품 출시영상에는 새 칩이 4㎚ 미세공정(TSMC)으로 제조돼 이전 세대에 비해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신경망처리장치(NPU) 성능이 각각 17%, 66%, 66% 개선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 사장은 “이번 신제품은 CPU·GPU·NPU 등 여러 측면에서 모두 업그레이드된 칩을 탑재했다”라며 “발열이나 GOS에 대해 세세하게 말하기보다는 직접 경험해보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개선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삼성 MX사업부는 갤럭시를 위한 전용 칩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엑시노스가 다른 제조사 스마트폰에도 채용되는 ‘범용칩’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갤럭시 기기에 최적화된 칩이 설계돼 탄생한다면 성능 논란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칩 개발을 삼성 시스템LSI나 파운드리 사업부와 함께하는지는 미지수다. 노 사장은 “열심히 검토하고 있고, 여러 파트너사와도 논의하고 있다”라며 “자체 칩 개발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아서 이런 부분을 내부 팀과 파트너사가 연구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 사장은 “(칩 개발) 구체화 시점이 되면 시장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