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반도체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독일 폭스바겐, 일본 도요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이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한데 삼성전자는 테슬라 외에는 완성차 회사와의 접점이 크지 않다. 생산량 기준 세계 4위 자동차 회사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전자의 동맹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폭스바겐에 따르면 베르톨트 헬렌탈 폭스바겐 전략반도체사업 총괄은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콘퍼런스 '세미콘 웨스트 2022′에서 대만 TSMC와 자체 칩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헤르베르트 디이스 폭스바겐그룹 CEO(왼쪽)가 웨이저자 TSMC CEO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에 올렸다. /헤르베르트 디이스 CEO 링크드인

앞서 지난달 헤르베르트 디이스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TSMC가 매년 6월 연례 주주총회 후 개최하는 최대 기술행사인 'TSMC 기술 심포지엄'에 참석, 웨이저자 TSMC CEO와 만났다. 디이스 CEO는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에 당시 웨이저자 CEO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올리며 "폭스바겐의 차세대 자동차 반도체는 당신(TSMC)의 공장 중 하나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대화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라고 했다.

자동차 반도체 생산 분야 강자인 TSMC는 최근 폭스바겐뿐 아니라 완성차 회사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협력사를 통해 반도체를 수급받았던 자동차 회사들이 극심한 공급난 이후,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튼 데 따른 것이다. 미국 GM도 TSMC와 협력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해 생산하는 자동차용 초고속 통신칩, 고성능 프로세서, 전력관리반도체. /삼성전자 제공

일본 도요타는 계열사이자 세계 2위의 부품회사인 덴소를 통해 TSMC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에 파운드리 공장을 세우려고 하는데, 이곳에 덴소가 지분투자한 것이다. 해당 공장은 10~20㎚(나노미터·10억분의 1m)대 공정 반도체가 주력으로, 덴소가 발주한 자동차 반도체가 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TSMC가 자동차 회사와 연대를 확대하는 것과 달리, 파운드리 업계 2위 삼성전자는 눈에 띄는 협력이 없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가 자동차용 통신칩이나 인포테인먼트 프로세서, 전력관리반도체 등을 설계하고 있지만, 모두 부품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 중에서는 테슬라 정도가 유일한 협력 사례로 여겨진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용 프로세서 역시 자동차 전장부품을 만드는 LG전자의 시스템에 얹는 반도체다.

업계는 시장 경쟁력 강화는 물론, 자동차 반도체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의 협업이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세계 4위의 자동차 생산 회사이자, 최근 반도체 수요가 높은 전동화에 힘을 쏟고 있어 협력 시너지 효과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자율주행 시대에 있어 반도체 역할이 더 커지는 만큼 현재 필요한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물론, 미래차 반도체 역량을 준비하는 데 있어 삼성전자만 한 파트너가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9년 신년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두 회사는 올해 초 실무진이 만나 반도체 분야 협력에 대한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 자동차 반도체 협력을 당부한 뒤 가진 논의다. 업계는 실무진 논의에서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 부분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자동차 반도체 협력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삼성의 사업 협력이 확대된다고 가정하면 디스플레이에서 반도체까지 미래 모빌리티시장에서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