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비용 상승 등으로 정보기술(IT) 기기 출하량이 줄면서 메모리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경우 완성품 제조사의 메모리 재고가 많아져 공급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시중에 메모리 공급과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제조사들은 차세대 D램 규격인 DDR5 양산으로 시장 분위기를 바꿔보려 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텔이 차세대 제품의 출시를 미루면서 양산 일정도 꼬이게 된 탓이다.
23일 대만계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3분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2분기에 비해 각각 3~8%, 0~5%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전자기기 등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위축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트렌드포스 설명이다. 특히 PC·모바일용 D램과 소비자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제품의 가격 하락이 예상되고 있다.
실제 최근 전자 및 부품 기업들은 원자재 공급망 불안과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올해 목표 출하량을 낮춰 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3500만대 줄어든 13억5700만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규진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PC와 모바일 등 IT 완제품의 부진을 비롯해 여러 어려운 상황으로 메모리 가격 하락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공급가 하락과 수요 위축에 따른 메모리 시장 부진은 이 분야 매출과 영업이익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기업들은 이미 이런 부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증가하는 서버용 메모리 제품으로 사업 무게추를 옮기는 중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인텔의 차세대 서버용 CPU 출시 일정이 지연되면서 녹록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메모리는 특성상 항상 CPU 등과 짝을 이뤄 판매되고 시장을 형성한다. 즉 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없이 D램 단독으로는 판매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차세대 CPU가 늦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메모리인 DDR5 D램 양산 일정도 뒤로 밀리고 있다.
업계는 인텔의 새 제품이 출시돼야 DDR5 수요가 본격화할 것으로 본다. AMD에서도 3분기 서버용 CPU를 내놓을 예정이지만, 점유율이 낮아 D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인텔의 올해 1분기 서버용 CPU 점유율은 88.4%에 달한다. AMD는 11.6%에 불과하다.
서버용 CPU와 D램의 큰 손으로 분류되는 북미 데이터센터들이 최근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것)으로 서버 투자를 뒤로 미룰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메모리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도 서버용 메모리 시장이 호황을 타면서 상쇄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번에는 수요 부진에 서버 투자 위축까지 더해져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메모리 비중이 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