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전 세계적으로 사이버 공격이 증가하면서 IBM,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사이버보안 기업 인수합병(M&A)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물려, 사이버보안 시장 육성을 약속한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내에서도 사이버보안 시장 성장 및 인수합병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IBM은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사이버보안 콘퍼런스 'RSAC 2022′에서 사이버보안기업 '란도리(Randori)'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018년 설립된 란도리는 외부에 공개된 취약점을 찾아 대응하는 공격표면관리(ASM) 솔루션기업이다. 기업 보안팀 담당자들은 해커가 어떤 계획을 갖고 회사 보안 시스템을 공격할지 등 '해커 로직'을 란도리를 통해 듣고 사이버 공격에 대비할 수 있다. 구체적인 인수합병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글로벌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란도리의 기업가치는 5000만달러(약 627억원)~1억달러(약 1254억원) 사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구글이 사이버보안 기업 맨디언트를 54억달러(약 6조7700억원)에 인수해 주목받았다. 이는 회사가 2012년 모토롤라모빌리티를 125억달러(약 15조6850억원)에 인수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다. 맨디언트는 2004년 미 공군 특수수사요원 출신 전문가들이 설립한 회사로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의 사이버 공격을 추적하는 사이버 공격 감지 및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사이버보안 기업을 인수하며 보안을 강화하고 있는 배경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의 빠른 성장세와 그에 따른 보안 위협 증가가 있다. 전 세계 공공 및 민간 기업이 모두 데이터 저장 방식을 클라우드로 바꾸면서 다량의 개인정보 및 기업 정보 자산 보호의 중요성도 커졌다. 이번에 구글이 인수한 맨디언트 역시 올해 말 인수 작업이 완료되면 구글 클라우드컴퓨팅 사업부에 편입된다.

세계적으로 사이버 공격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기업의 보안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글로벌 보안기업 체크포인트 소프트웨어 테크놀로지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기업 등 조직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29% 증가했으며, 랜섬웨어 공격 건수는 93%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의 사이버보안 기업 투자 금액은 2016년 3억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23억9700만달러까지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글로벌 사이버보안 시장 규모가 연평균 14% 증가하며 2025년에는 1300억달러(약 163조850억원)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일러스트=이은현

반면 국내 사이버보안 시장은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아직 영세하다. 지난해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가 발표한 정보보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사이버보안 시장 매출액은 3조9214억원으로 2019년 대비 8.4% 증가했으나, 여전히 세계시장(171조1601억원) 규모의 3%도 되지 않는다. 또 전체 사이버보안 기업 중 자본금이 50억원 미만인 영세한 업체가 93.2%를 차지하고 있어, 큰 금액이 요구되는 인수합병 역시 쉽지 않은 환경이다.

사이버보안업계 관계자는 "영세한 업체들이 중심인 산업인데 소규모 업체들은 공공기관 등에 서비스를 납품해 연간 매출 20억원만 벌어도 충분히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에 참여할 큰 요인도, 여력도 되지 않는다"라며 "특히 그나마 규모가 큰 기업 몇 곳에서 근무하던 인력이 자기 기술을 닦고 나와 특허를 내고 회사를 차려서 보안 서비스를 판매하는 경우도 많은데, 인수합병 등을 위해 서로 회사가 자신의 원천 기술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것도 어렵다"라고 했다.

다만 국내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큰 사이버보안 기업을 중심으로 사업다각화를 위해 서서히 인수합병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안랩은 2020년 인공지능(AI) 보안기업 '제이슨'을 인수했고 이어 지난해 운영기술(OT) 보안 전문기업 '나온웍스'를 인수했다. 안랩 관계자는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분야를 더 강화하고 기술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두 건의 인수합병을 진행했으며 다수 스타트업에도 투자하고 있다"라고 했다. 지난해 이글루시큐리티도 데이터센터 최적화 기업인 파이오링크를 인수했다. 이글루시큐리티는 이번 인수를 바탕으로 네트워크 보안 시장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대기업 중에선 LG전자가 전장사업 강화를 위해 지난해 이스라엘 자동차 사이버보안기업인 '사이벨럼'을 인수하기도 했다.

국내 사이버보안업계에서는 적극적인 기업 인수합병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 등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이버보안 인재 10만명 양성 등을 약속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관련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수송동 서머셋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제4차 세종사이버안보포럼'에서 윤두식 KISIA 부회장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 사이버보안기업, 스타트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화, 전문화가 촉진돼야 하고, 이를 위한 전문투자조합과 모태펀드 등이 정부 차원에서 지원돼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