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6일(현지 시각) 미국 실리콘밸리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개최한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 2022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맥 등 자사 차세대 제품군에 탑재될 신규 소프트웨어 기능과 최신 칩 'M2′를 장착한 맥북에어와 맥북프로를 공개했다.
다만 업계의 기대를 모았던 MR(혼합현실) 기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애플은 최근 이사회에서 새로운 MR 헤드셋을 선보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업계에선 이를 두고 사실상 개발을 마무리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애플은 이날 아이폰 새 운영체제 'iOS16′의 잠금 화면 개인화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iOS16은 오는 9월 출시가 유력한 아이폰14 시리즈 4종에 들어갈 전망이다.
발표자로 나선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담당 수석 부사장은 우선 새로 적용되는 다중 레이어 효과를 소개했다. 이 효과는 잠금 화면으로 설정한 사진 속 피사체를 배경과 분리해 시간 앞에 배치, 깊이를 더하는 게 특징이다. 사용자가 피사체를 원하는 위치로 옮기거나 크기를 조정할 수도 있다.
사용자는 편집 화면에서 잠금 화면에 다양한 스타일을 적용할 수도 있다. 손가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쓸어 넘기면 기본으로 제공되는 스타일별로 날짜와 시간, 색상이 바뀌는 식이다. 날짜와 시간, 색상을 하나씩 눌러 원하는 디자인으로 바꿀 수도 있다.
페더리기 부사장은 사용자가 앞으로 이런 잠금 화면을 여러 개 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잠금 화면을 길게 누르면 뜨는 대기 화면에서 원하는 만큼 잠금 화면을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쓸어 넘긴 뒤 플러스(+) 버튼을 누르면 된다. 페더리기 부사장은 "이를 위해 '월페이퍼 갤러리'를 새롭게 선보인다"며 "사용자는 월페이퍼 갤러리가 제안하는 수백만개의 디자인을 참고할 수 있다. 또 '포토 셔플' 기능을 통해 하루 종일 잠금 화면 사진이 바뀌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애플은 메시지 등 알림이 잠금 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알림 방식도 바꿨다. 이전에는 화면 상단에 뜨던 각종 알림을 하단으로 밀어낸 것이다. 사용자가 확인하지 않은 알림은 이제 아래부터 위로 쌓이게 된다.
애플은 이와 함께 잠금 화면에 위젯을 추가할 수 있는 기능도 공개했다. 편집 화면에서 + 버튼을 누르면 하단에 '위젯 갤러리'가 뜨는데, 여기서 캘린더(달력)·날씨 등을 골라 원하는 위치에 끌어다 놓으면 된다. 날씨의 경우, 잠금 화면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기존 날씨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배경으로 제공하던 애니메이션을 큰 화면으로 끌어온 것이다. 밖에 비가 오면 화면에서도 비가 내리는 식이다.
애플은 위젯에 집중 모드도 포함시켰다. 잠금 화면 중 하나에 집중 모드 위젯을 깐 뒤, 활성화를 원할 때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대신 그 화면을 켜기만 하면 된다. 집중 모드는 ▲방해금지 ▲수면 ▲개인 시간 ▲업무 총 4가지로 구성돼 있으며, 사용자가 필터를 통해 캘린더·메일·메시지·사파리 등 원하는 앱의 알림만 표시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페더리기 부사장은 이번 잠금 화면 업데이트와 관련해 "아이폰은 '역시 아이폰이다'라는 걸 증명하면서도 동시에 개성있고 아름다우며 편리한 방식을 제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밖에도 애플은 사용자가 발송한 메시지의 내용을 바꾸거나 전송을 취소할 수 있도록 메시지 앱에 편집 기능도 추가했다. 사용자는 iOS16부터 최근에 삭제한 메시지를 복구하고, 나중에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읽지 않은 상태로 표시할 수도 있다.
애플은 메일 앱에도 수신자 메일함에 도착하기 전에 이메일 전송을 취소할 수 있는 기능과 예약 발송 기능을 더했다. 또 이미지 속 텍스트를 인식하는 '라이브 텍스트' 기능의 지원 대상을 동영상으로 확대했다.
애플은 이날 웨어러블 기기 운영체제인 '워치OS 9′와 데스크톱 운영체제인 '맥OS 벤츄라', 태블릿 운영체제인 '아이패드OS 16′도 사전 공개했다. 이 운영체제는 iOS16과 마찬가지로 오는 9월에 정식 출시될 전망이다. 워치OS 9에는 심방세동 기록 기능, 복용약 관리 기능과 함께 페이스(애플워치 화면) 4종이 추가됐다. 맥OS 벤츄라에는 작업 중인 앱과 창 사이 전환을 매끄럽게 하는 '스테이지 매니저' 기능이 생겼다.
애플은 이처럼 소프트웨어에 방점을 찍었지만, 정작 사용자들이 환호한 건 하드웨어였다. 애플은 이날 맥북·아이패드용 칩 M2를 공개하고 이를 탑재한 13.6인치 맥북에어와 13인치 맥북프로를 오는 7월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0년 11월에 M1을 탑재한 맥북에어와 맥북프로를 공개한 지 1년 7개월 만이다.
2세대 5㎚(나노미터·10억분의 1m) 기술을 사용해 제작된 M2는 8코어(4/4) CPU(중앙처리장치), 10코어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탑재했다. 전작 대비 성능은 각각 18%, 35% 향상됐다. 트랜지스터 역시 전작 대비 25% 더 많은 200억개로 늘었다.
조니 스루지 애플 하드웨어 기술 담당 수석 부사장은 "M2는 M1 대비 50% 확장된 100GB/s 통합 메모리 대역폭을 제공하고, 최대 24GB의 고속 통합 메모리를 지원한다"며 "머신러닝 기능을 담당하는 뉴럴엔진은 초당 최대 15조8000억회의 연산을 처리한다. 이는 M1 대비 40% 향상된 처리량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M2 CPU는 경쟁사의 최신 10코어 PC 노트북 칩 대비 동일한 전력에서 두 배의 성능을 제공한다"고 자신했다.
M2를 탑재한 새 맥북에어는 전작보다 큰 13.6형 디스플레이에 전면 노치(카메라 및 적외선 센서 등이 디스플레이를 가리는 부분) 카메라 디자인이 적용됐다. 제품 두께는 11.3㎜, 무게는 1.24㎏으로 전작의 16㎜, 1.29㎏보다 얇고 가벼워졌다. 지난해 맥북프로에 탑재됐던 '맥세이프' 전용 충전 포트를 달아 맥북에어 최초로 급속 충전을 지원하며, 배터리는 최대 18시간 영상 재생이 가능한 수준이다. 색상은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미드나이트 ▲스타라이트 등 4가지다.
한편 애플은 이날 선구매후결제(Buy Now Pay Later) 기능을 선보이며 금융업 생태계 확장에 대한 야심도 드러냈다. 2030세대에서 유행하는 BNPL 서비스를 지갑 앱에 '애플페이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것이다. 사용자는 이를 통해 별도의 이자나 수수료 없이 구매 대금을 6주에 걸쳐 4회 분납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은 이날 포드, 랜드로버, 벤츠, 포르셰 등 완성차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내년 말부터 나오는 차량에 강화된 '카플레이' 기능을 도입할 계획도 밝혔다. 차세대 카플레이는 차량과 아이폰을 연동해 차량 내 수많은 정보를 통합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시해줄 시스템으로, 차량 속도와 RPM, 연료 게이지를 확인할 수 있고, 냉난방 및 환기 조절, 라디오 제어 등도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업계가 주목했던 MR 헤드셋은 이날 애플의 발표 내용에서 빠졌다. 영국 IT 전문매체 테크레이더는 앞서 "애플의 MR 헤드셋이 회사 경영진에게 시연됐다"며 "애플이 WWDC 2022 또는 올해 가을 개최하는 이벤트에서 이를 공개할 것이라는 신호로 풀이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