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TSMC가 애플이 올해 하반기 출시하는 아이폰14(가칭)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한다. 차세대 기술인 3㎚ 양산이 올해 말 이후로 연기된 상황에서 4㎚ 공정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 비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애플은 3년 연속 아이폰용 AP에 5㎚ 공정을 적용하게 됐다.
2일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GSM아레나 등에 따르면 TSMC는 최근 애플과 아이폰14용 A16 바이오닉에 5㎚ 공정을 적용하기로 확정했다. 아이폰14는 올해 9월 출시될 예정으로 TSMC는 이달 말부터 A16 바이오닉을 공급할 계획이다.
애플은 지난 2020년 출시한 A14 바이오닉(아이폰 12 탑재)에 처음으로 5㎚ 공정을 적용했고, 지난해 나온 A15 바이오닉(아이폰 13 탑재)에도 그대로 5㎚ 공정을 사용했다. 2세대 5㎚에 해당하는 N5P를 적용했지만 성능 5%, 전력 소모를 10% 개선에 만족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올해 출시할 A16 바이오닉에 5㎚ 공정을 또다시 적용하는 것이다.
애플 전문가로 통하는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 연구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TSMC가 올해까지는 5㎚ 공정 기술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TSMC는 2023년까지 3㎚와 4㎚ 공정 칩 양산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했다. 애플이 아이폰용 AP에 3년 연속 5㎚ 공정을 적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애초 TSMC는 올해 상반기부터 3㎚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TSMC는 지난 2020년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2년부터 3㎚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업계는 애플 A16 바이오닉에 TSMC의 3㎚ 공정이 처음으로 적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3㎚ 공정의 수율이 예상을 밑돌면서 TSMC는 지난해 중간 단계인 4㎚ 공정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자체 AP인 엑시노스 2200과 퀄컴의 스냅드래곤8 1세대에 4㎚ 공정을 적용하자 TSMC도 계획을 바꿔 대만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9000에 4㎚ 공정을 적용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TSMC와 삼성전자의 4㎚ 공정 개발은 3㎚ 공정으로 가기 위한 중간고사 성격이 강하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TSMC는 올해 출시되는 애플 A16 바이오닉에 4㎚가 아닌 5㎚ 공정을 적용하기로 애플과 합의했다. 대만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지타임스는 "애플이 4㎚ 대비 양산 안정성이 높은 5㎚ 공정을 TSMC에 먼저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애플이 5㎚ 공정을 적용하는 대신 TSMC가 파운드리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했다.
업계는 TSMC가 3㎚ 공정 수율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TSMC는 3㎚ 공정에 기존 핀펫(FinFET)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반도체의 구성을 이루는 트랜지스터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과 채널을 제어하는 게이트로 구분되는데, 핀펫은 채널의 3면을 게이트가 둘러싸는 형태를 말한다.
3㎚ 공정은 5㎚ 공정 대비 칩 면적은 35%, 소비 전력은 50% 줄어드는 반면 처리 속도는 30% 정도 빠르다. 그런데 핀펫 구조를 3㎚ 공정 이하에 적용할 경우 전류 흐름을 세밀하게 제어하는 채널 조정 능력을 개선하는 게 쉽지 않아 소비 전력과 처리 속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3㎚ 공정에 핀펫 구조를 적용하는 TSMC가 수율 문제를 겪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게이트와 채널이 4면에서 맞닿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구조를 3㎚ 공정에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3㎚ 양산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은 것도 세계 최초로 GAA 구조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2나노 공정부터 GAA를 적용하겠다는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3㎚ 공정 개발에 이미 GAA 구조를 적용하고 있다"라며 "GAA 공정을 동시에 적용한 2㎚ 공정에서 두 회사의 기술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