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崛起)가 흔들릴 조짐을 보인다.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의 큰 손인 애플이 중국 내 최대 디스플레이 회사인 BOE와 맺은 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탓이다. BOE는 최근 애플 아이폰13용 OLED를 공급하면서 애플과 협의없이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이를 문제 삼아 BOE 측에 아이폰14용 패널 주문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와 애플 공급망 경쟁 구도를 형성한 BOE가 최종 탈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애플이 보장하는 수천만대의 패널 공급이 무산될 위기여서다.

26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BOE는 애플 측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폰14(가칭)용 OLED 패널 생산과 공급이 모두 중단된 상태다. 중국 언론 등에 따르면 BOE는 애플과 아이폰14용 6.1인치 OLED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OELD 패널 5000만장을 납품하기로 했지만, 애초 계획과 다르게 차질을 빚고 있다.

BOE의 플렉서블 OLED 패널. /BOE 제공

BOE는 지난 2020년 아이폰12 리퍼비시(교체품) 패널 공급사로 애플 공급망에 진입했고, 이어 지난해 아이폰13 신품의 패널을 아주 소량 납품해 왔다. 여기에 아이폰14 패널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양분했던 애플 공급망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이는 애플의 공급망 다변화 정책에 따른 것으로, 아이폰 OLED 패널은 아이폰X(텐)까지 삼성디스플레이가 독점해왔고, 아이폰11 공급망에 LG디스플레이가 새로 진입했다.

애플은 BOE가 올초 아이폰13의 패널 설계를 임의대로 변경한 것에 심기가 상했다고 한다. BOE는 수율(전체 생산품 중 양품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폰13용 OLED 박막트랜지스터(TFT) 회로 폭을 넓혔는데, 애플이 이를 걸고 넘어진 것이다. 애플은 부품 공급사가 사전 승인 없이 설계를 바꾸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BOE는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안정적인 공급을 최우선에 두는 애플 정책상 BOE 주문 물량은 급격히 줄었다.

BOE 고위 임원 등이 애플 미국 본사를 방문해 여러 사안에 대한 소명을 했지만, 애플의 태도는 완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올해 BOE에 선주문한 아이폰14 패널 3000만장을 거둬들여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로 나눠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두 회사는 지난해 아이폰13용 패널을 각각 73%, 27% 공급했다.

그래픽=이은현

올 9월 출시 예정인 아이폰14의 OLED 패널은 늦어도 7월부터 공급이 시작돼야 한다. 현 시점 BOE의 올해 아이폰14 패널 공급량은 ‘0′에 수렴한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BOE가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회사라는 점에서 애플과의 갈등은 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가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정치적으로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이 드러난 사례라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애플은 최근 중국내 코로나19 봉쇄 정책 등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생산 거점을 중국 밖으로 빼내는 시도가 이뤄지는 중이다.

그러나 애플이 BOE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여전히 애플의 최대 시장이고, 부품 수급 전략 상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 OLED 공급을 모두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시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은 1200만대를 기록, 시장 4위에 올랐다. 애플은 비록 오포, 아너, 비보 등 중국 토종 업체에 밀리긴 했지만, 여전히 중국 시장 내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게 일반적이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