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세종 청사. /조선비즈DB

통신 3사가 5세대 이동통신(5G) 유휴데이터로 3조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겼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통신사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정부는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사의 100~110GB(기가바이트) 요금제의 가입자수나 이들이 사용하지 않고 남기는 데이터양 등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기정통부는 “요금제는 통신사의 권한”이라는 입장인데, 10년 만에 4%대 물가를 기록하는 등 국민의 통신비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 가중되는 상황에서 과기정통부의 통신비 인식이 안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과기정통부와 통신업계, 국회 등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110GB 요금제 등 요금제별 가입자수나 데이터 사용량, 잔여 데이터양 등에 대한 정보제공을 통신사 측에 요청했지만 ‘영업기밀’을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 관계자는 “국회의 자료 요구에 따라, 통신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영업기밀을 이유로 자료를 받지 못했다”라며 “요금제 심의 등을 이유로 통신사가 자료를 자의적으로 제출하지 않는 이상 통신사에 억지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할 순 없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중간요금제 도입을 선언했지만,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기본적인 현황 파악도 못 한 상황인 것이다.

◇ 중간 없는 5G 요금제… 통신사, 1분기 영업이익만 1.1조

최근 통신사들의 요금제 출시 과정에서 과기정통부가 검증에 손을 놨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통신요금 인가제가 시행될 때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017670)(무선)과 KT(030200)(유선)가 신규 요금제를 출시할 경우, 요금제 설계 관련 데이터를 요구해 요금제를 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인가제가 폐지되면서 통신사들이 내부 자료를 과기정통부에 제출할 의무가 사라졌다. 과기정통부는 인가제 폐지로 급격한 요금인상은 없고, 오히려 경쟁을 통해 파격적인 요금제가 출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2019년 5G가 출범했지만, 요금제는 10G(5만5000원), 110GB(6만9000원) 요금제로 양분됐다. 가입자들은 월 20~40GB정도의 데이터를 사용하지만, 요금제가 다양하지 않아 110GB 요금제에 가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렇게 가입자들이 사용하지 못한 데이터는 현재까지 약 3조원대로 추정된다.

서울 시내의 한 휴대폰 할인매장을 앞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그 결과 통신 3사의 1분기 실적은 5G 가입자 2300만명 돌파 등에 따라 역대급을 기록 중이다. KT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1.1% 증가한 6266억원을 기록했다. SK텔레콤은 4324억원으로 16% 늘었다. LG유플러스(032640)는 약 2500억~26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며, 통신 3사의 합계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국민들의 ‘통신비 누수’가 통신사들의 지갑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비상식적인 요금제 체계를 과기정통부가 승인했다는 점이다. 1991년 인가제가 도입된 뒤 2019년 폐지되기 전까지, 과기정통부가 요금제 출시를 반려한 것은 2019년 5G 출범을 앞두고 SK텔레콤의 5G 요금제 심의가 처음이었다. 이후 인가제는 폐지되고, 유보신고제가 도입됐지만, 반려된 상황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사실상 과기정통부의 30년간 요금제를 심의하면서 반려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반려된 요금 체계도 단 하루 만에 재인가를 받으면서 졸속 심사 논란을 받았다. 2019년 SK텔레콤은 5G 요금제 인가를 받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고 한 차례 반려됐다. 과기정통부 등에 따르면, 당시 SK텔레콤은 150GB, 200GB, 300GB, 무제한 요금제 등 7만원대 이상의 요금제로 인가를 받으려 했다. 과기정통부와 자문위는 “대용량 고가 구간만으로 구성돼 있어, 대다수 중·소량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우려가 크므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결국 SK텔레콤은 5만원대 10GB 요금제를 추가해 재인가를 받게 됐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10GB와 110GB 요금제 사이에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는 요금체계를 승인했다는 것은 과기정통부의 직무 유기다”라며 “이후 KT와 LG유플러스가 마치 복붙(복사 붙여넣기)한 것처럼 양분된 요금제를 내놨고, 현재의 기형적인 5G 요금 체계가 생기게 됐다”고 했다. 사실상 과기정통부가 통신사들의 요금 담합을 법적으로 승인해준 셈이라는 얘기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오른쪽 첫번째)이 2019년 7월 5G 요금제 인가 자료 정보공개청구결과 및 감사원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여연대

◇ 통신사 견제 수단 없는 정부… 시장엔 경쟁이 사라졌다

과기정통부가 통신사를 제어할 수 있는 견제 장치는 사실상 없다. 이미 인가제는 폐지됐고, 그나마 남아 있는 수단이 기지국 검증과 주파수 할당 등인데, 이마저도 솜방망이 처벌로 사실상 무력화 된 상태다.

과기정통부는 2018년 5월 5G 주파수를 할당하며 기지국 의무 구축 기준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3년 차에 구축 수량이 기준의 10% 미만이면 주파수 할당 취소 조치를 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통신사의 28㎓ 기지국 구축현황을 보면, 총 의무 구축 기지국 수는 4만5000개지만, 인정된 기지국 수는 5059개(11.2%)에 불과했다. 주파수 할당 취소를 피하기 위한 ‘꼼수 투자’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과기정통부는 통신사의 투자를 촉진시키겠다는 이유로 지하철과 농어촌 등 통신 3사가 공동으로 구축하는 기지국까지 인정해줬다. 사실상 통신사들이 5G 설비 투자를 줄일 수 있도록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11일 취임한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의 취임사에는 5G와 6G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여기에 15개 부처 차관급 인사 발표에서도 과기정통부는 제외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통신사들이 담합으로 인식될 만큼, 비슷비슷한 요금제를 설계하지 못하도록, 요금제 담당 업무를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수위원회 출신의 한 인사는 “통신비가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이지만, 단일 품목으로는 기여도가 높고, 소비자 체감 수준이 높다는 특성이 있다”며 “실제 지난 정부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전 국민 통신비 지원 등을 추진한 것도 이러한 효과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새 정부에서 민생안정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은 만큼 5G 중간요금제 도입과 5G망 고도화 등에 관한 총체적인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