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반도체는 물론, 반도체가 적용된 컴퓨터 산업 전체를 책임진다는 개념의 '컴퓨터 포위론'을 들고나왔다. 현대 사회의 근간인 반도체와 함께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을 둘러싼 소프트웨어(SW), 제조 등 생태계 전반을 망라한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 발표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진출을 포함한 'IDM(종합반도체기업) 2.0′ 전략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왕좌를 되찾고, 빅테크 기업 리더십을 공고히 하겠다는 게 인텔의 생각이다.

슈퍼컴퓨터 오로라. 인텔 CPU와 GPU를 사용한다. /인텔 제공

인텔은 지난 10일(현지시각) 파트너 행사인 인텔 비전 2022를 열고, 회사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했다. 인텔이 고객사와 파트너를 상대로 이런 행사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역대 가장 역동적인 시장 속에 있다"라며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제는 매우 복잡하고, 상호 연결되고 있어 얼마나 빨리 첨단 기술과 인프라를 도입해 그 효과를 극대화할지에 기업 성공이 달려있다"고 했다.

겔싱어 CEO는 "고객과 파트너가 이런 복잡한 환경에서 디지털 전환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반도체, 소프트웨어, 서비스 역량을 제공하겠다"라며 "인텔의 자산과 규모를 공유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 반도체 수요 폭증 부른 '컴퓨팅 슈퍼파워'

인텔은 IT 분야의 4가지 '슈퍼파워'를 꼽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연결(유비쿼터스 컴퓨팅 등), 클라우드, 말단(엣지) 컴퓨팅 인프라 등이다. 이 4가지 슈퍼파워는 반도체 수요의 폭증을 불러왔다. 인텔이 단순 반도체 설계·제조사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까지 모든 생태계를 아우르려는 건 디지털 전환에 지금 엄청난 속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겔싱어 CEO는 이를 '토리드 페이스(Torrid Pace)'라고 표현하면서 "오늘날 변화는 어느 때보다 빠르지만 미래에 돌아보면 가장 느릴 것이다"라고 했다.

펫 겔싱어 인텔 CEO./ 인텔 제공

이런 슈퍼파워에 모두 대응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인텔의 전략이다. 여기에 제조 역량을 더한다. 인텔은 최근 첨단 기술의 발달로 엄청난 성능을 내는 반도체가 등장했으나, 이를 최적화할 소프트웨어 파워는 수준이 높아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내세우고 있다. 겔싱어 CEO는 "디지털 시대에 소비자는 반도체 소프트웨어를 접목한 솔루션을 원한다"라며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SaaS를 통해 더 많은 기능을 고객에게 제공하겠다"고 했다. 또 겔싱어 CEO는 "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해 SaaS 업체 인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라고도 했다.

이는 삼성전자나 TSMC와는 전략상 결이 다른 부분이다. 이 기업들은 '제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이런 소프트 파워를 통해 경쟁사를 압도하겠다는 게 인텔의 의도다.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도 제조 시설 투자를 늘리는 건 이 때문이다. 겔싱어 CEO는 "여전히 고객의 주문에 전량 공급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인텔은 지금껏 수십년간 한 것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공급망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라자 코두리 인텔 수석부사장. /인텔 제공

◇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퍼포먼스를 제공한다

IT 기술이 발달했지만, 복잡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 충격과 보안 등에 취약점이 발생하고 있다. 또 사용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컴퓨팅 리소스를 활용하기를 원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게 바로 인텔의 '엔드게임 프로젝트'다.

이날 라자 코두리 인텔 수석부사장은 에픽게임스의 '매트릭스 어웨큰스 시티'라는 4K 메타버스 게임을 노트북으로 구동했다. 고해상도 그래픽을 사용한 탓에 이 게임은 높은 성능을 PC에 요구하는데, 시연에서도 성능 저하로 화면 끊김 등이 발생했다. 코두리 수석부사장은 노트북 바탕화면의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했고, 그러자 캐릭터가 끊김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엔드게임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다.

라자 코두리 부사장이 엔드게임 프로젝트 시연을 보이고 있다. /인텔 제공

코두리 부사장은 "클라우드 연결을 통한 성능 향상으로 메타버스를 활성화하는 데 특별한 계정이나 (하드웨어) 설치를 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인텔은 '엔드게임 프로젝트'를 올해 하반기 테스트하고, 1~2년 이내에 상용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늦어도 2년 안에 고가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입하지 않아도 메타버스를 즐기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을 것이라는 게 인텔의 설명이다.

12세대 인텔 코어 HX 프로세서. /인텔 제공

인텔은 이를 위한 슈퍼컴퓨팅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코두리 부사장은 "원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제타플롭스 규모의 슈퍼컴퓨팅을 구축할 것이다"라고 했다. 플롭스는 중앙처리장치(CPU)의 성능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1초간 수행할 수 있는 부동소수점 연산 횟수다. 제타플롭스는 10의 21제곱을 의미하며, 1초에 10해번 연산이 이뤄지는 성능이다.

◇ IT 시대 리드를 위한 다양한 솔루션

인텔은 슈퍼컴퓨터 '오로라', 데이터센터 워크로드용 '하바나 가우디2′ AI 프로세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기반 데이터센터용 CPU '인텔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 데이터센터용 GPU '아틱사운드', 12세대 인텔 코어 HX 프로세서 등을 소개하고, 실제 사용 사례 등에 대해 설명했다.

릭 스티븐스 아르곤연구소 부소장. /인텔 제공

릭 스티븐슨 미(美) 아르곤국립연구소 부소장은 "인텔의 폰테 베키오 GPU와 CPU 칩인 인텔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로 1만제곱피트(929㎡) 면적에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고 있다"라며 2엑사플롭스 연산(1초에 200경회 연산)이 가능해 질 것이다"라고 했다. '인텔 제온 스케일블러 프로세서(코드명: 사파이어 래피즈)'는 기존 프로세서보다 AI 성능이 30배 향상된 것이 특징이다. 이 프로세서는 현재 선적을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GPU인 '아틱사운드'는 초당 150번의 연산(TOPS)이 가능하며, 개발자들이 오픈소스를 활용해 손쉽게 코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델, 슈퍼마이크로, 인스터 등 15개 파트너 회사가 탑재를 준비 중에 있고, 3분기 출시가 예정돼 이 분야 선두 기업인 엔비디아를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산드라 리베라 인텔 수석부사장이 하나바 가우디2를 소개하고 있다. /인텔 제공

'하바나 가우디2′는 인텔이 2019년 20억달러(약 2조5700억원)에 인수한 AI칩 회사 하바나랩이 개발한 반도체다. AMD의 AI 프로세서 A100 텐서에 비해 주요 비전 및 자연어처리에서 2배 향상된 딥러닝 성능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