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통상 및 국제 이슈를 다루는 국제협력국 산하에 국제통상직 간부는 '0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이른바 '넷플릭스 방지법'을 놓고 미국 측의 통상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지만, 과기정통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전무(全無)한 것이다. 과기정통부 측은 "통상은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교섭본부 역할이다"라며 책임을 산업통상자원부로 돌리고 있다.
미국 측의 거센 통상 압박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지난 21일 넷플릭스 방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글로벌 플랫폼은 그 규모에 맞게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 망 사용료 부과 문제를 살펴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최근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이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는 상황에서, 과기정통부에도 전문성을 기반으로 통상교섭본부와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디지털 통상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6일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내 국제통상직 공무원은 과장급 4명, 사무관급 7명 등 총 11명이다. 전체 800명 직원 가운데 1.3%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는 과기정통부 내 통상 및 다자무역 관련 조직인 국제협력국 내에는 통상직 간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사무관급으로 4명이 배치됐지만, 실제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외부에서 경력으로 채용된 사무관 한 명뿐이었다.
국내 ICT 업계를 관장하는 과기정통부의 통상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통상직은 국가 간 통상 관계를 조정하는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995년(행정고시 32회)에 신설됐다. 이러한 전문성 때문에 5급 통상직에 합격하면 대부분 산업통상자원부와 과기정통부에 배치를 받는다. 인사혁신처가 매년 통상직에 대한 부처의 수요를 조사하는데, 과기정통부도 꾸준히 통상직의 필요성을 제기해 인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통상과 관련 없는 조직에 근무하면서, 통상 전문성을 키워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부처 인사담당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부처 간 교류를 하거나 다른 부서를 원할 경우, 업무를 바꿀 수도 있다"면서도 "보통 국제통상직은 각 부처의 통상, 다자무역, 자유무역협정(FTA) 등 전문성을 살리는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문제는 콘텐츠, 플랫폼, 포털, 클라우드 등 신생 디지털 산업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제공 사업자(CP)의 망 이용대가 지불을 의무화하는 '넷플릭스 방지법'을 논의하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내국민 대우' 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며, 통상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지난 21일 국회 논의를 앞두고 "디지털 경제와 관련한 최근 입법은 외국 기업에 그들의 혁신과 투자가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사실상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결국 미국 측의 강력한 통상 압박에 넷플릭스 방지법은 보류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국내 ICT 산업을 보호해야 할 과기정통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인사는 "그간 통상은 반도체, 자동차, 가전, 농수산물 분야의 '관세 부과' 여부를 놓고 싸웠다면 콘텐츠, 포털, 플랫폼 등 디지털 분야는 '규범'을 놓고 싸워야 하는 시기다"라며 "통상이 곧 경제안보와 국가이익으로 직결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통상교섭본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과기정통부가 전자상거래, 디지털 통상 규범 등에 전문성을 가진 통상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