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가 밀려드는 주문으로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넘칠 정도로 많은데, 두 회사의 생산력은 제한된 탓이다. 생산 배정과 관련한 파운드리 입김도 세지고 있다. 이 탓에 일부 대형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는 물량을 먼저 받으려 선불을 지급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13일 TSMC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매출은 4910억8000만대만달러(약 20조8300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5.5% 증가했다. TSMC의 1분기 영업이익은 2026억5360만대만달러(약 8조6000억원), 영업이익률은 42~44%가 전망된다. TSMC는 오는 14일 공정별 매출과 이익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1분기는 일반적으로 계절적 비수기에 해당하는데, TSMC는 역대 1분기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된다.
호실적은 공급 단가 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TSMC는 지난해 고객사에 따라 공급 단가를 15~30% 조정했다. 웨이퍼(반도체 원판) 등 원재료 값 인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으나, 실제로는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TSMC를 통해 반도체 생산을 하려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일부 대형 팹리스의 경우 선지급금을 내가며 물량을 확보할 정도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돈을 먼저 내지 않고서는 생산 배정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TSMC는 선지급금을 받아 미세공정 전환 등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최고경영자(CEO)가 생산공장을 찾아 반도체 물량을 달라고 읍소하는 일도 있다. 대만 정보기술(IT) 매체 디지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펫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주 대만으로 직접 날아가 TSMC 관계자들을 만났다. 겔싱어 CEO는 TSMC 측에 7㎚ 칩의 생산 물량을 보장해주고, 다른 공정 주문량을 늘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디지타임스는 보도했다. 인텔은 현재 반도체 부족으로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등을 제때 출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텔은 신형 그래픽카드도 TSMC의 6㎚ 공정을 통해 만들 예정이다.
삼성전자 역시 10㎚ 이하 공정을 100% 가동하고 있음에도 공급이 달려 팹리스가 줄을 선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역대 최고인 77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증권가는 이 가운데 반도체에서만 약 40%인 30조~33조원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본다. 파운드리가 속해 있는 비(非)메모리 매출은 7조원으로 예상된다. 1분기가 비교적 비수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처음으로 파운드리 연간 매출이 30조원도 넘을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현재 퀄컴, AMD, 엔비디아, 테슬라, 구글, IBM 등의 10㎚ 이하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 파운드리의 경우 2023년까지 주문이 꽉 차 있는 상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삼성전자 비메모리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파운드리 가동률 상승과 5㎚ 공정 수율 개선 효과로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삼성 파운드리는 2023년까지 2년 치 물량을 수주해 올해부터 뚜렷한 실적 개선 추세가 나타날 전망이다”라고 했다.
최근 삼성 파운드리의 낮은 수율(전체 생산품 중 양품 비율)로 대형 고객사가 이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업계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삼성전자 측에도 선지급금을 내고 반도체를 받으려는 팹리스가 적지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율 문제라는 것은 웨이퍼를 더 투입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고 공정 경험이 쌓일수록 수율도 높아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라며 “그보다 현재 10㎚ 이하 파운드리가 가능한 회사가 전 세계에 단 두 곳뿐이라, 인텔이 본격적으로 파운드리에 뛰어들기 이전까지는 TSMC와 삼성전자에 기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