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대만 미디어텍이 만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중저가 스마트폰인 갤럭시A 시리즈에 제한적으로 미디어텍 AP를 사용했는데,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 성능 저하 논란을 겪으면서 미디어텍 AP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부가 생산 중인 엑시노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5일 전자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생산을 시작하는 갤럭시S22 FE(팬에디션)와 갤럭시S23(가칭)에 미디어텍의 AP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갤럭시S22 FE는 제품의 절반 가까이를, 갤럭시S23는 아시아 지역 일부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미디어텍 AP를 탑재한다는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퀄컴 AP과 엑시노스만을 사용했다. 중저가 스마트폰의 경우 단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디어텍 AP를 일부 사용했지만,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미디어텍 AP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건 사실상 처음이다.
미디어텍은 퀄컴, 애플과 함께 세계 3대 AP 업체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미디어텍의 전 세계 AP 점유율은 26.3%로 퀄컴(37.7%)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각각 26.0%, 6.6%의 점유율로 뒤를 이었다.
미디어텍은 그동안 400달러(48만8000원) 이하 중저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AP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에도 전체 출하량의 95%가 중저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 미디어텍이 선보인 차세대 프리미엄 모바일 AP ‘디멘시티9000′이 호평을 받으면서 미디어텍은 프리미엄 AP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미 기술 수준에서는 1위 퀄컴을 따라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 성능 측정 기관인 긱벤치에 따르면 디멘시티9000은 업계 최고 제품으로 평가받는 퀄컴 스냅드래곤8 1세대(Gen1)와 비교해 싱글·멀티 코어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업계 최고 제품보다 연산 속도가 더 빠르다는 의미다. 동시에 대만 TSMC의 최신 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하면서 전력 효율성에서도 퀄컴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게 긱벤치의 분석이다.
미디어텍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넘어 미국과 한국, 유럽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디어텍은 중국 AP 시장에서 5년 넘게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는 10%대로 부진하다. 이런 이유로 미디어텍은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세계 1위 스마트폰 업체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자사 AP를 탑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차이리싱 미디어텍 대표이사는 “올해 중국 이외 지역에서 고부가 제품인 5세대 이동통신(5G)용 AP 출하량이 전년 대비 2배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확산에 애를 먹고 있다.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가 올해 초 출시한 삼성 갤럭시S22에 엑시노스 대신 퀄컴 AP가 탑재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대해 샘모바일은 “엑시노스의 신뢰에 금이 가는 상징적인 사건이다”라고 했다.
올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업계 최초 3㎚ 공정을 도입한 엑시노스를 양산해 점유율을 높여가기로 했다. 업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기술력을 보유한 만큼 제품 수율과 가격 경쟁력에서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디어텍은 기본적으로 중저가 AP를 만드는 업체인 만큼 가격 경쟁력에서 장점이 있다”라며 “삼성 엑시노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높인 고성능 제품이라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plication Processor) 약자다.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 5G 통신칩 등 제품 동작에 필요한 핵심 기능을 모아 놓은 통합 반도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