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 TSMC. /로이터 연합뉴스

애플이 아이폰 신제품에 들어갈 무선주파수(RF·Radio Frequency)칩 생산을 업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대만 TSMC에 맡겼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퀄컴을 통해 애플용 RF칩을 생산했는데, 애플이 TSMC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RF칩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전자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폰14(가칭)에 사용할 5세대 이동통신(5G) RF칩 제조를 TSMC에 위탁하기로 결정, 최근 계약을 체결했다. TSMC의 5G RF칩은 6㎚(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기반으로, 칩 크기와 전력 소모를 이전 세대인 8㎚ 대비 약 20%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TSMC가 애플에 공급하는 RF칩 물량은 연간 15만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북미 시장에 판매하는 아이폰14 프로맥스 모델에만 한정적으로 탑재될 수 있다는 의미다. 대만 경제일보는 최근 “애플이 선단 공정 생산 능력이 크고 품질과 수율(완성품 비율)이 안정적인 TSMC의 손을 잡았다”라며 “TSMC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동안 10%대에 머물렀는데, 앞으로 25%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RF칩은 모뎀에서 나오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 사용 가능한 무선 주파수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주파수 송수신 반도체다. 통신 기지국과 단말기를 연결하는 동시에 기기 간 연결 등에 활용된다.

RF칩은 14㎚ 이상 성숙 공정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스마트폰으로 수요가 한정된 상황에서 기술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에 기술 개발도 느렸다. 하지만 5G 스마트폰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8㎚ 공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6월 기존 공정과 비교해 칩 크기는 줄이고, 전력효율을 개선한 8㎚ RF칩 공정 개발에 성공한 것도 같은 이유다.

TSMC는 지난해 말 6㎚ 공정 개발에 성공하면서 삼성전자에 한발 앞서가는 모습이다. 6㎚ RF칩은 5G 스마트폰을 넘어 인공지능(AI) 네트워크 장비, 데이터 센터 등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RF칩의 크기와 전력 소모가 크게 줄어든 만큼 연산 및 배터리 성능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는 12인치 웨이퍼 팹 모습. /TSMC 제공

애플이 TSMC에 5G RF칩 생산을 맡기면서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는 삼성전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인 퀄컴을 통해 애플의 RF칩을 생산해왔다. 그런데 애플이 퀄컴을 건너뛰고 TSMC와 직접 거래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물량 대부분이 TSMC로 넘어간 것이다.

삼성전자는 RF칩 공정 미세화와 성능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고객사를 확보해 나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5G RF칩 시장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RF칩 파운드리는 소형·저전력·고품질 통신의 장점을 갖춰 고객들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최첨단 RF칩을 만들 수 있는 파운드리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5억개 넘는 RF칩을 생산한 경험도 있다”라며 “5G RF칩 시장으로 삼성전자와 TSMC 파운드리 기술 경쟁이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