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이 지원한 포스텍(포항공대) 물리학과 이길호・조길영 교수 연구팀이 빛으로 고체 물질의 양자 성질을 다양하게 제어하고 측정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관련 논문은 영국 현지시각으로 지난 16일 최상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22일 연구팀에 따르면 고체 물질의 성질은 고체 내 전자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 금속, 그렇지 않으면 부도체로 정의한다. 금속과 부도체의 중간으로 전자가 움직이는 고체를 반도체로 구분한다.
지금까지 물질 안의 원자와 전자 움직임을 변경해 고체의 성질을 바꾸려면 강한 열이나 압력을 가해야 했다. 또는 인위적으로 불순물을 넣는 화학적인 방법이 동원됐다.
과학계에서는 아주 작은 고체 물질의 경우 기존 방식(열, 압력, 화학물질 첨가)이 아닌 빛을 쬐어주면 양자 성질이 바뀐 ‘플로겟’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이 1900대 중반부터 제안됐다. 플로겟 상태는 전자와 빛이 양자역학적으로 결합한 상태로, 지난 2013년 처음 관측됐고 이후 몇건의 사례가 보고됐다.
플로켓 연구가 지속적인 성과를 내면 고체에 빛을 쪼임으로서 ‘위상물질’을 발현할 수 있을 것으로 과학계는 여긴다. 위상물질은 기존 반도체 기반 정보 소자의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양자 물질을 의미한다. 신소재, 양자기술 분야 활용도가 높아 전 세계적으로 플로켓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지금까지 구현된 플로켓 상태는 250펨토초(1펨토초는 1000조분의 1초) 수준의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플로켓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 양자 고체 물질에 가하는 에너지가 너무 커 강한 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로켓 상태는 존재 여부만 확인하고, 특성이나 활용 연구는 미진했다.
이길호 연구팀은 ‘그래핀-조셉슨 접합 소자’에 그간 사용했던 적외선 대신 마이크로파를 서서히 쬐어 플로켓 상태를 장시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방식은 빛의 세기가 기존과 비교해 1조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약해 열 발생도 현저하게 줄었다. 연구팀에 의한 플로켓 상태는 약 25시간 이상 지속됐다고 전해진다. 그래핀-조셉슨 접합 소자는 두 개의 초전도체(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도체) 사이를 그래핀(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돼 2차원 평면 구조를 이루는 고분자 탄소 동소체)으로 붙인 것이다.
또 연구팀은 최적화된 ‘초전도 터널링’ 분석법으로 ‘그래핀-조셉슨 접합 소자’에 가해지는 빛의 세기, 파장 등에 따라 달라지는 플로켓 상태의 특징을 정량적으로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길호∙조길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플로켓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플로켓 상태를 상세하게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에 의미가 있다”라며 “향후 편광 등 빛의 특성과 플로켓 상태 사이의 상관 관계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연구는 지난 2017년 6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과제로 선정돼 5년째 지원을 받고 있다. 또 이길호 교수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지원으로 초고감도 마이크로파 검출기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관련 성과는 차세대 양자정보기술 상용화를 위한 원천 연구로 인정받아 2020년 10월 ‘네이처’지에 게재됐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과학 기술 육성을 목표로 2013년부터 1조 5000억원을 출연해 시행 중인 연구 지원 공익 사업이다. 지금까지 총 706건의 연구과제에 9237억원의 연구비가 지원됐다. 지원 연구진은 약 1만4000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국제학술지에 2600건의 논문이 게재됐고, 사이언스(9건), 네이처(8건), 셀(1건) 등 최상위 국제학술지에 소개된 논문도 450건에 달한다.
올해는 기초과학, 소재,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자유공모 연구과제 720여건을 신청 받아 심사를 진행했다. 조만간 지원 과제를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지원 과제로 선정될 경우 최대 5년간 최대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지난해 지원된 연구비는 자유공모 49건 804억7000만원, 지정테마 12건 152억1000만원 등 총 956억80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