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망사용료

국내 통신사인 SK브로드밴드와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공룡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두고 법정 공방 2라운드에 돌입한다. 오는 16일 2심 첫 변론 기일이 시작된다.

SK브로드밴드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MWC 2022′에서 세계 약 750개 통신사업자를 회원사로 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넷플릭스를 포함한 콘텐츠사업자(CP)의 ‘망 사용료’ 분담을 주장하면서다. 이로 인해 한 발 떨어져 지켜보던 KT, LG유플러스 등 다른 국내 사업자도 망 사용료 요구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2심에서 트래픽을 줄이기 위해 개발한 자체 네트워크 기술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1조원 규모를 투자해 네트워크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인프라를 무상으로 구축했기 때문에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트래픽을 절감할 수 있는 기술력으로 이미 망 사용료 명목의 대가를 지불했다는 의미다.

SK브로드밴드 CI. /SK브로드밴드

◇ 세계 통신사 등에 업은 SKB…KT·LGU+도 참전 가능성↑

10일 서울고등법원에 따르면 오는 16일 오후 5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채무부존재 확인’ 항소심 소송 첫 변론을 진행한다.

이날 열릴 변론은 양측의 ‘맞고소’로 소송 병합 이후 처음 열린다. 지난해 6월 1심 재판부는 넷플릭스 측이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넷플릭스는 즉각 항소했고, SK브로드밴드 역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으로 맞불을 놓았다.

SK브로드밴드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넷플릭스의 트래픽 증가로 인한 비용 부담이 늘어 이를 양측이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넷플릭스 서비스로 인한 트래픽은 2018년 5월 50Gbps(1초당 기가비트)에서 2020년 3월 8배 증가한 400Gbps로 급증했고, 같은 해 6월 600Gbps까지 치솟았다. 1Gbps는 1초에 대략 10억비트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부담해야 할 금액도 2017년 15억원에서 2020년 270억원가량으로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는 더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1심과는 달리, 2심 첫 변론을 앞둔 SK브로드밴드는 세계 통신사를 우군으로 확보한 상태다. 최근 폐막한 MWC 2022에서 주최 측인 GSMA 이사회는 넷플릭스 등 CP로부터 콘텐츠 전송으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 증가에 따른 망 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SK브로드밴드는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분쟁을 벌이는 중이다. GSMA 이사회에는 구현모 KT 대표가 포함된 만큼 앞으로 KT와 LG유플러스 등도 넷플릭스 등 CP를 상대로 망 사용료를 요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실제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도 GSMA 이사회의 의견에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한다. LG유플러스 측은 “현재 망 사용료 부과 관련 법안 제정이 논의 중인 만큼 법 제정 시 이를 준수하겠다”라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통신사 관계자는 “그동안 넷플릭스와 제휴 등을 고려해 통신사들이 협력을 이어오기는 했지만, SK브로드밴드와 마찬가지로 트래픽 증가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면서 “이번 GSMA 합의로 통신사들이 망 사용료에 대한 부담 분담을 요구하고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본다”라고 평가했다.

넷플릭스 2022년 한국 콘텐츠 라인업. /넷플릭스

◇ 궁지 몰린 넷플릭스, 자체 기술력 강조할 듯

1심에서 ‘망 사용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펼쳤던 넷플릭스는 항소심에서 자체 기술력을 활용해 망 사용료 지불에 준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약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쏟아 개발한 기술을 통해 통신사업자들도 트래픽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넷플릭스는 통신사업자의 망 사용료 부과 주장이 ‘이중 과금’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용자들이 통신사업자에 인터넷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신들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가져다 놓는 것일 뿐 전송은 온전히 통신사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넷플릭스는 자체 개발한 기술력인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OCA)를 통해 트래픽 절감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OCA는 넷플릭스의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다. CDN은 콘텐츠 제공자의 중앙서버와 이용자의 물리적 거리가 멀 때 여러 곳으로 분산해 효율을 높인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미디어 오픈 토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양혁 기자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특정 시간대 가입자들이 시청할 콘텐츠를 예측하고 미리 저장해 트래픽을 줄였다고 설명한다. 쿠팡과 같은 유통업체가 지역별 물류센터를 두고 물건을 배송하는 식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넷플릭스는 한국과 인접한 일본 도쿄, 홍콩 등에 OCA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이용자가 시청하는 넷플릭스 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일본, 홍콩 통신사와 한국 사이 해저케이블을 거친 후 SK브로드밴드 등 통신사의 회선을 거쳐 전달된다.

특히 넷플릭스는 지난 2011년부터 세계 142개국에 1만개 이상의 OCA를 무상 보급했고, 1000개 이상의 통신사가 이용 중이라고 밝혔다. OCA를 활용하면 넷플릭스 트래픽을 최대 10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방한했던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은 “2020년 한해 통신사들이 OCA로 12억달러(약 1조4700억원)의 절감 효과를 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넷플릭스의 주장대로라면 통신사 1곳당 OCA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금액은 1억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2020년 기준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한 금액(270억원)과 격차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