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2022년 한국 콘텐츠 라인업. /넷플릭스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내지 못하겠다고 소송까지 불사한 넷플릭스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세계 약 750개 통신사업자를 회원사로 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에 망 사용료를 분담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면서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GSMA의 결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유튜브 등으로도 망 사용료 분쟁이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그란비아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MWC22 참석 소감을 밝힌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2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MWC 2022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GSMA가 내놓은 망 사용료 관련 보고서는 정부의 기존 입장과 비슷하다”라고 밝혔다. 트래픽을 과도하게 만들어내는 CP가 통신망에 기여해야 하지만, 이용대가는 기업 간 논의해야 할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임 장관의 발언은 앞서 지난해 법원의 판결과 일맥상통한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망과 관련된 사안은 기업과 기업이 협의해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명시했다.

구현모 KT 대표가 /KT

임 장관이 망 사용료에 대해 언급한 것은 전날 GSMA가 글로벌 CP에 망 사용료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GSMA 이사회 멤버인 구현모 KT 대표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GSMA 산하 정책 그룹이 글로벌 CP의 망 사용료 분담 필요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라며 “여러 방안 중 정부 주도 펀드에 글로벌 CP가 돈을 내는 형태가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내용이 담겼고, 이사회가 이를 승인했다”라고 설명했다.

구 대표는 CP의 ‘망 무임승차’ 논란을 망 사용료가 아닌, 망 투자 비용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모바일의 경우 현재 트래픽의 40%가 CP에서 발생하고 있어 통신사업자(ISP)와 CP가 투자를 분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양측이 함께 투자 비용을 분담하면 혜택은 이용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단순 ‘돈’을 부과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용자 효용 측면에서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통신사들까지 CP를 향한 ‘망 사용료’ 압박에 동참하면서 국내서 진행 중인 소송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넷플릭스와 소송 중인 국내 통신사는 SK브로드밴드가 유일하지만, 향후 KT, LG유플러스 등도 동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사 현업 부서에서는 경쟁 관계를 떠나 동종 업계로서 SK브로드밴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라고 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넷플릭스는 오는 16일 항소심 변론을 앞두고 있다.

국내 통신사들이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구글 등 다른 CP들과 소송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기준 국내서 구글 서비스 이용자는 하루 평균 5150만명이다. 트래픽 발생량 비중은 국내 전체 27.1%에 달한다. 이어 넷플릭스(169만명·7.2%), 메타(677만명·3.5%), 네이버(4030만명·2.1%), 카카오(4059만명·1.2%) 등의 순이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지난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구글·넷플릭스 등 빅테크와의 역차별 문제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GIO는 “우리가 망 비용을 낸다면 저희보다 망을 훨씬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해외 기업들도 같은 기준으로 비용을 내야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김 의장 역시 “국회에서 공정한 인터넷 환경이 마련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