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위에 오른 삼성전자가 시설투자에서도 TSMC와 인텔 등 경쟁자를 밀어내고 세계 1위를 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은 TSMC가 50% 이상으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에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내준 인텔은 시설투자액 역시 삼성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미국은 공급망 강화를 위해 반도체 시설투자액의 40%를 돌려주는 '반도체 지원법'을 도입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의 투자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9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 반도체 분야 시설투자액은 43조6000억원으로, 극자외선(EUV) 기반 1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D램, V6 낸드플래시 등 첨단공정이 도입된 평택과 시안 증설 공정 전환에 사용됐다. 또 평택 P3 라인 인프라 투자에도 쓰였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경우 평택 EUV 5㎚ 공정 증설에 투자가 집행됐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거둔 매출 94조1600억원 가운데, 시설투자 비중은 46.3%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사상 최고 매출로 반도체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출의 절반 가까이 시설투자에 쓴 것이다"라며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분야에서 산업 리더십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매출 대비 시설투자 비중은 파운드리 업계 1위 대만 TSMC가 더 많았다. TSMC는 지난해 매출 568억220만달러(약 68조원) 중 300억3900만달러(약 35조9800억원)를 시설투자에 사용했다. 절대적인 금액은 삼성전자의 80% 수준으로 다소 적었지만, 매출 대비 비중은 52.9%로 삼성전자보다 높았다.
지난해 매출 731억달러(약 84조5500억원)로 삼성에 반도체 1위 자리를 내준 미국 인텔은 지난해 187억3300만달러(약 22조4400억원)를 시설투자비로 집행했다.
엔비디아, AMD, 퀄컴 등 팹리스라고 불리는 반도체 설계기업들은 생산 공장이 없다는 특성상 생산 시설투자에 큰 금액을 쓰지 않는다. 이와 달리 종합반도체기업(IDM)이나 파운드리의 경우 시설투자는 곧 기업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게 업계 통념이다. 따라서 인텔이 삼성전자에 반도체 1위를 빼앗긴 것도 결국 이런 시설투자 경쟁에 밀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설투자액은 총 1460억달러(약 174조9000억원)로 삼성전자, TSMC, 인텔이 6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SK하이닉스도 13조4000억원의 시설투자를 진행했다.
올해 역시 반도체업계의 대규모 시설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도입하려고 하는 '반도체 지원법'은 시설투자액의 40%를 돌려주는 세제혜택을 골자로 하고 있어 미국 투자가 집중될 전망이다.
TSMC는 올해 440억달러(약 52조7000억원)를 시설투자에 쓰겠다고 했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47%쯤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부터 3년간 1000억달러(약 119조8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의 하나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은 미국 애리조나에 120억달러(약 14조3760억원)를 들여 짓는 파운드리 신공장이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이 통과되면 48억달러 정도의 세제혜택을 볼 수 있다. 이밖에 일본과 독일 등에도 투자를 고려 중이다.
인텔 역시 220억달러(약 26조35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 두 곳을 신설한다. 인텔은 88억달러를 돌려받는다. SK하이닉스에 낸드사업부를 매각해 확보한 현금과 미국 지원 등으로 4년 만에 복귀를 선언한 파운드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겠다는 게 인텔의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0조3600억원)를 투자하는 미국 테일러시 파운드리 2공장 외에도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인 평택캠퍼스의 P4 라인 증설 등 시설투자에 나선다. 투자 규모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시장상황을 고려해 유연하게 가져갈 것이다"라고 했다. 업계는 올해 삼성전자가 미국 공장 신설을 포함 지난해 이상의 금액을 시설투자에 할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오는 2030년까지 17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과잉투자로 반도체업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으나, 각 기업은 반도체 수요가 올해나 그 이후에도 꾸준할 것으로 보고 있어 투자를 늘려가는 추세다"라며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한 파격적인 세제지원도 반도체 주요 업체들의 시설투자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