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재로 최신 기술이 담긴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화웨이가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뿐 아니라 통신장비 시장에서도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시장조사기관 모바일 엑스퍼트의 최신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 시장 점유율은 20.4%로 경쟁사인 스웨덴 에릭슨(26.9%)은 물론 핀란드 노키아(21.9%)에도 밀린 3위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1위에서 3위로 두 계단이나 밀려난 것이다.
통신장비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초창기 대대적인 5세대 이동통신(5G) 투자가 진행되고 이를 화웨이·ZTE 같은 현지 통신장비 업체에 몰아주면서 화웨이가 미국 제재에도 업계 1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면,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미국, 유럽 등 반(反)화웨이 기조 국가들의 5G 투자가 시작되면서 에릭슨·노키아가 반사이익을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만 "화웨이의 큰 매출처인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5G 투자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라며 "한 번 계약을 하면 세팅, 운영·보수까지 오랜 기간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는 통신장비업의 특성상 4세대 이동통신(LTE)에서 5G로 세대가 넘어가더라도 우방국에서의 입지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종합해 보면, 현재의 점유율 구도는 초기 단계인 5G 투자가 국가별로 시간 차를 두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 최근 주로 화웨이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들의 5G 투자가 진행됐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약간의 점유율 변화가 있더라도 에릭슨·노키아·화웨이 등 3강의 구도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한국의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힘입어 초기 점유율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점유율이 8%대로 내려앉았다.
이런 집계는 최근 발표된 에릭슨·노키아의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도 확인됐다. 스웨덴 정부가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하면서 중국 사업 매출에서 직격탄을 맞았던 에릭슨은 지난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한 713억크로나(약 9조4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중국 매출이 18억크로나 감소한 것을 유럽, 남아메리카 등에서의 계약 수주로 상쇄할 수 있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뵈르예 에크홀름 에릭슨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 5G 출시가 비교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5G에 대한 수요는 계속 좋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영호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에릭슨의 중국 매출 감소 영향은 다음 분기까지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이미 매출 비중이 11% 이상에서 1~3%대까지 줄었기 때문에 더 이상 큰 의미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
5G 초창기 자체 칩 개발 부진 등의 이유로 경쟁사 대비 부진한 출발을 보였던 노키아는 최근 반(反)화웨이 움직임에 따라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고 있다. 최근 실적 발표에서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것은 그런 자신감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페카 룬드마크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미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인도와 같은 국가에서 다가올 5G 경매는 더 많은 성장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제재에도 성장세를 지속해 온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이 30% 급감하는 등 본격적인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통신장비와 함께 화웨이의 핵심 사업 축이었던 스마트폰은 지난해 기준 글로벌 순위권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그 자리를 화웨이에서 독립한 아너를 비롯해, 샤오미·오포·비보 같은 현지 업체가 대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