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SMIC 공장 내부 모습. /SMIC 제공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면서 반도체 자립을 향한 중국 업체들의 기술 내재화가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반도체 산업 현황’ 보고서에서 중국 기업의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오는 2024년 17%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020년 9%와 비교해 4년 만에 8%포인트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은 중국 반도체 매출의 증가세를 근거로 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매출은 2020년 전년 대비 30.6% 성장했는데, 협회는 앞으로도 중국이 연평균 30% 성장세를 수년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최근 3년간 자국 반도체 업체에 20억달러(약 2조4130억원)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에서 소비되는 반도체의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파격적인 지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8년 칭화유니그룹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반도체는 제조업의 심장으로 심장이 약하면 아무리 덩치가 커도 강해질 수 없다”라며 “반도체 분야에서 중대 돌파를 이뤄내 세계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최고봉에 올라서야 한다”라고 했다. 사실상 반도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다만 지난해까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반도체 자급률은 지난해 말 기준 20%에도 못 미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일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실패로 끝났다”라며 “지난 3년간 추진된 최소 6개의 새로운 대규모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라고 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일부 반도체 업체들은 1개의 반도체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등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WSJ의 지적이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와 취안신집적회로(QXIC)가 대표적이다. 파산 위기를 겪고 회생 절차를 진행 중인 중국 대표 메모리 업체 칭화유니도 비슷하다. 칭화유니는 과도한 인수·합병 과정에서 쌓인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중국이 사실상 반도체 자립 계획을 포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중국 1위 파운드리 업체 SMIC는 최근 들어 3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 숙련 공정 생산라인 증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미국 정부의 제재가 계속되자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미세 공정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SMIC가 숙련 공정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라고 썼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4월 칭화유니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신화연합

이런 전망에도 반도체 자립을 향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 기세는 여전히 뜨겁다는 게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의 평가다. 협회는 보고서에서 “20%에 못 미치는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라며 “중국은 5년 전까지 자급률이 3.8%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의 거센 제재에도 반도체 자급률을 20%까지 끌어올린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당장은 중국이 반도체 장비 수급과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조달 특혜 등을 축적할 경우 한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한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당분간 20%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과 한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 차이가 2년 내 3%포인트 내로 좁혀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최첨단 제조 능력을 보유 중인 한국과 이제 숙련 공정 생산을 시작한 중국을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라며 “선제적인 투자를 통한 기술 경쟁력 확보 없이는 한국 반도체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