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18년 이후 4년 만에 5세대 이동통신(5G) 주파수 추가 할당 계획을 밝히면서 국내 장비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에 주파수를 추가로 할당받은 업체는 오는 2025년까지 15만개의 무선국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15만개 무선국 설치를 전국망 설치로 보고 있다. 비록 ‘진짜 5G’ 구현을 위한 28㎓(기가헤르츠) 기지국이 설치 저조로 논란을 빚고 있지만, 3.5㎓라도 완벽히 이행해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한 기업이 전국망 설치를 완료하면 나머지 업체도 뒤를 따를 수밖에 없어 경쟁 심화를 계기로 한 국내 5G 생태계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5G 장비 3강' 노키아, 화웨이, 에릭슨

◇ 무선국 ‘15만개’ 채워라…설치비용 1.6兆+α 추산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오는 2월 국내 이동통신 3사를 대상으로 진행할 5G 주파수 3.4~3.42㎓(기가헤르츠) 대역 20㎒(메가헤르츠)폭을 할당받기 위해서는 오는 2025년까지 15만개의 무선국 구축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통신업계는 과거 주파수 할당시 부과했던 전국망 기준 망 구축 의무가 70~80% 수준이었지만, 이번의 경우 전국망 기준 100%이기 때문에 비용 등 구축에 따른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경매 대상 주파수 대역은 3.5㎓다. 5G 주파수 대역은 크게 3.5㎓와 28㎓로 나뉜다. 저주파수 대역인 3.5㎓는 고주파수보다 데이터 전송량이 적지만, 전파 도달거리가 길고 전송속도도 빠르다. 이에 반해 고주파 대역인 28㎓는 도달거리가 짧지만, 대역폭이 넓어 대용량 데이터 전송에 강점이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통신사는 3.5㎓ 기준 각 7만개 무선국을 구축했다. 주파수 추가 할당을 받는 곳은 4년 동안 8만개의 무선국을 더 추가해야 한다. 지난 2020년 주파수 재할당 정책방안 공개설명회에서 통신업계는 5G 무선국 1개를 설치하는 데 투입되는 비용을 2000만원으로 언급했다. 8만개을 설치하려면 1조6000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경매를 통해 주파수를 할당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 2조원 안팎의 비용이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누가 주파수를 추가 할당받아도 가져가는 쪽의 (5G) 속도는 20% 늘어날 것이다”라며 “15만개라는 숫자를 첫 의무로 부과했는데, 이는 사실상 전국망 설치를 의미하며 한 곳에서 대규모 망 설치에 나서면 경쟁사들도 추가 설비 투자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통신업계에서 제기되는 ‘특혜’ 논란과 별개로 이번 경매를 계기로 5G 설비투자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5G

◇ ”장비산업 경쟁력, 5G 주도권 확보와 직결”

5G 장비산업의 발전은 세계 5G 주도권과 직결한다. 5G는 단순 이동통신 기술의 진화가 아닌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의 핵심 기술이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장비산업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꼽힌다.

미국이 지난 2018년부터 중국 화웨이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배경이다. 미국은 2019년 화웨이를 무역 제재 대상 기업으로 올려 미국 기업이 정부 승인 없이 화웨이와 거래하지 못하게 했다. 2020년에는 미국 장비를 사용해 부품을 생산한 외국 기업에도 이를 적용하며 제재 수위를 더 높였다. 사실상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차단했다. 이 여파로 지난해 화웨이의 매출은 전년보다 약 30% 급감한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화웨이는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굳건한 1위를 기록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화웨이의 세계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9%다. 전년 30% 수준에서 하락했지만, 여전히 2위 업체와 격차는 10%포인트 이상이다. 노키아와 에릭슨이 각각 15%로 뒤를 잇고 있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화웨이는 3.5㎓에 집중해왔고, 삼성전자는 28㎓ 대역에 집중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3.5㎓ 대역 5G 통신장비 실물을 처음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화웨이를 따라잡기 역부족이었다. 특히 화웨이의 경우 기술력에서 앞서는 것은 물론, 가격도 30% 이상 경쟁사와 비교해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과 KT는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의 3.5㎓ 대역 5G 장비로 망을 구축했다. 기지국 구축 막판까지 화웨이를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LG유플러스는 일찌감치 화웨이를 택했다.

한국은 지난 2019년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했지만, 장비시장에서 외국 기업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지난해 내놓은 ‘5G 장비 기업의 효율성 및 생산성 분석’에 따르면 국내 5G 산업 생태계는 연매출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 위주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2020년 기준 한국기업데이터(KED)가 보유한 1100만 기업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국내 5G 장비 산업 분야에 해당하는 기업은 총 1만519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영세한 업체 위주로 구성된 5G 장비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통신업계의 투자 촉진을 독려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