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기 시작한 지 2년이 흘렀다. 비대면(언택트) 수요가 커지며 오프라인 기반 스타트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기업은 버티다가 폐업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여행·모임·공연 등 코로나 최대 취약업종에서도 생존한 기업이 있다. 이들은 코로나에도 더 큰 도약을 꿈꾼다. 코로나 시대에서 생존한 스타트업 대표와 만나 ‘보릿고개에서의 생존법’은 무엇이었는지, 미래 계획은 무엇인지 세 편에 걸쳐 들어봤다. [편집자주]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가 서울 강남구 트레바리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오프라인 독서모임 스타트업 ‘트레바리’의 윤수영 대표는 2년 전인 2020년 새해에만 해도 회사의 가파른 성장으로 손익분기점 달성을 기대했다. 유료 회원 수는 창업 직후인 2015년 9월과 비교해 4년 반 후인 2020년 2월 100배 성장했으니 충분히 할 만한 기대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오프라인 모임이 중단된 것이다. 회원 수는 지난해 9월, 코로나19 직전 대비 75% 줄어 최저를 찍었다. 한때 직원 30%가 퇴사했다.

트레바리는 비대면 독서모임 ‘랜선 트레바리’를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 마지못해 벌인 일이었지만 온라인 서비스 운영이란 새로운 경험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 실적 악화 속에서도 온라인 회원 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 전체 회원의 20% 이상으로 비중이 커졌다. 오프라인 모임이 속속 재개되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고 독서뿐 아니라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종합 커뮤니티 서비스로 거듭나겠다는 게 트레바리의 목표다.

이미 일부 오프라인 모임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회원 수는 다시 늘고 있다. 윤 대표는 “트레바리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는 ‘업데이트’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는 ‘연결’이란 니즈를 해결한다”라며 “이 니즈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강남구 트레바리 강남아지트에서 윤수영 대표를 만났다.

그래픽=손민균

―오프라인 서비스다 보니 코로나19에 특히 타격이 컸을 것 같다.

“그렇다. 죽을 뻔했다.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1월에 임대료 비싼 강남 11층짜리 빌딩 전체를 아지트로 오픈했다. (아지트는 트레바리 회원들이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하고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으로 서울에 강남아지트와 안국아지트 2곳이 있다.) 강남권 수요를 잡기 위해 회사 입장에선 중대한 결정을 한 건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두기 정책이 시작됐다. 독서모임은 연기를 거듭해야 했고 회원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 신규 가입이 끊기는 건 물론 기존 회원의 멤버십 환불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올해 9월 회원 수는 코로나19 직전과 비교해 75% 줄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제일 가슴 아팠던 일은 4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가 올해 초 “저도 이제 커리어(경력)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퇴사를 통보했던 거였다. 이 친구 1명만이 아니었다. 원래 40명이었던 직원이 하나둘 떠나가 올해 초 28명만 남았다. 이해도 간다. 서비스는 중단되고 실적은 날로 악화하는데 정작 내부적으론 업무가 줄지 않았다. 독서모임이란 업종이 사실상 국내에서 우리 하나뿐이라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이 바뀔 때마다 우리 운영정책엔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회원들에게 어떻게 안내할지, 오프라인을 재개할지, 모임 인원수는 몇 명으로 조정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객 불만과 환불 요청에 대응해야 했다. 우리 서비스는 정해진 멤버들끼리 독서 토론을 하고 독후감을 주고받는 ‘클럽’이란 소모임 단위로 이뤄지고, 클럽 수는 수백개나 된다. 모임 인원수를 조절하는 것조차도 우리에겐 부담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전보다 장사는 안 되는데 할 일은 그대로였다.”

―당장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2020년 9월 알토스벤처스로부터 4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받았는데 그 돈이 큰 도움이 됐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자생이 가능해 투자 유치가 급하지 않았을 텐데, 이대로 실적이 더 악화하면 투자 유치할 때 협상력만 더 낮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계획보다 한템포 빠르게 투자 유치를 했다. 알토스벤처스를 찾아갔더니 그쪽에서도 우리 비전을 알아줬다.” (당시 알토스벤처스는 트레바리에 대해 “좋은 창업자와 팀이 사명감을 갖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드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잘 극복해 수익성과 가치를 모두 가진 회사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라고 평가했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가 서울 강남구 트레바리 강남아지트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사업적으론 어떤 변화가 있었나.

“‘랜선 트레바리’를 열었다. 기존 독서모임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보면 되는데 줌(zoom), 슬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비스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전히 대체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대신 좋은 콘텐츠 제공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온라인만의 장점이었다. 오프라인으로는 만나기 힘든 각계 전문가의 얘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연결보단 업데이트에 좀 더 중점을 두게 된다. 이런 장점을 살려, 랜선 트레바리를 기획한 지 일주일 만에 출시했다. 가격은 오프라인의 5분의 1로 낮췄다. 첫 달인 2020년 4월 선착순 200명을 모집했는데 순식간에 매진됐다. 현재 전체 회원 대비 온라인 유료회원 비중은 20%대로 커졌다.”

―오프라인 운영만 하던 회사가 어떻게 일주일 만에 비대면 전환이 가능했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서모임은 책과 주제에 따라 ‘클럽’이란 소모임 수백개(많을 땐 400여개)로 나뉘어 운영되고 이 중 30% 정도는 해당 분야 전문가인 클럽장이 참석한다.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이영주 역대 2호 여성 검사장, 김소영 전 대법관, 소설가 장강명, 배우 손수현, 김세연 전 국회의원, 정혜승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같은 클럽장이 있고 일부는 온라인 독서모임에도 나왔다. 덕분에 회원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전문가 섭외는 어떻게 가능했나.

“왕도는 없었다. 들이대는 거다. 특히 트레바리라는 브랜드가 생소했던 사업 초창기엔 더욱. 타율(섭외 성공률)이 높지 않다. 단지 타석에 많이 선 것뿐이다. 한명을 섭외하기 위해 매주 같은 시각에 알람을 맞춰놓고 연락하거나 찾아가거나 강연을 쫓아다녔다. 상헌님(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같은 경우는 2016년 네이버 대표직을 그만두신 다음 날 페이스북으로 직접 연락해 만남을 요청했다. 트레바리의 비전을 알아주셨는지 일이 잘 풀려서 지금은 클럽장을 맡고 있다. 상헌님은 트레바리 안국아지트의 건물주이기도 하다.”

트레바리의 클럽들. /웹사이트 캡처

―오프라인 모임이 재개돼서 회원들도 하나둘 돌아오는데. 온라인 경험도 얻었으니 결국 코로나19가 전화위복이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온라인 사업 계획을 들려달라.

“지난 2년 동안 온라인 독서모임을 위해 개발 인력을 늘렸다. 전체 직원은 코로나19 직전 40명보다 많은 50여명인데 이 중 4분의 1이 개발자다. 다만 앞으론 온라인 서비스를 독자적으로 강화하는 것보단 오프라인을 보조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온라인 독서모임을 하면서 오프라인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기존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사람들이 사랑해줬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온라인으로도 이용자가 유입된 것 같다.

앞으론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온·오프라인 종합 서비스로 확장하려고 한다. 우리가 만들려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SNS)나 블라인드 같은 익명 커뮤니티가 아니라, 오프라인 모임 멤버들끼리 온라인에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실명 커뮤니티이자 관심사 기반 버티컬 커뮤니티다. 코로나19는 언젠가 끝날 것이기 때문에 오프라인을 여전히 중심에 두고,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보조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사랑받는 비결이 있다면.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오퍼(운영)하는 것이다.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많은 서비스가 사람이 모이는 판만 깔아줄 뿐 적극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커뮤니티는 서로 다른 다수의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이견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커뮤니티가 유지되려면 이를 중재해줘야 한다. 우리처럼 유료 오프라인 모임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우린 전체 직원의 절반이 이런 일을 하는 오퍼레이터(운영자)다. 일이 정형화되지 않아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데, 가령 책과 주제를 고르기 위한 의견 조율부터 토론 중이나 다른 회원의 독후감 퀄리티를 두고 발생하는 갈등, 젠더 이슈와 관련한 이견, 신규 멤버의 적응 문제 등의 해결을 돕는다. 불가피할 경우 문제가 되는 고객을 과감하게 탈퇴시켜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일에 인력, 시간, 비용을 쓰는 게 단기적으론 사업 수익성 측면에선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커뮤니티를 성장시키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가 서울 강남구 트레바리 강남아지트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창업한 계기가 궁금하다.

“2013년 포털 다음(DAUM)에 콘텐츠 기획자로 입사했다. 다음 CEO(최고경영책임자)가 되고 싶어서. 하지만 얼마 안 가 2015년 퇴사하고 직접 회사를 차리게 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때문이었다. 당시 다음이 카카오보다 규모가 컸는데 합병을 주도한 건 카카오였다. PC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 변했기 때문인데,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큰 회사도 도태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10년, 20년 후엔 또 어떤 파도(변화)가 올지 모르겠지만 어떤 파도든지 잘 타는 서퍼가 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정글(스타트업계)에서 고생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단기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장기적으론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개인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에서는 모바일용 스낵 콘텐츠 기획을 맡았는데 내가 원하는 것 만큼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평소에 독서모임을 즐겨했는데, 모임은 재밌어도 운영은 하나도 재미없고 힘든 일이란 걸 알고 경험하고 있었다. 독서모임 운영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엔 분명 수요가 있을 것이고 독서모임이 많아지는 건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포부를 들려달라.

“사람들, 특히 대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업데이트’와 ‘연결’의 니즈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고 잘 해결이 안 될 것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현대 사회의 외로움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회사 중에 큰 회사가 나올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트레바리를 만나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트레바리는 2019년 2월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에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이미 독서모임으론 국내 최대 규모를 이룩했고 앞으로도 사람을 돈으로 보지 않고 진정성 있게 대하는 커뮤니티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계속 성장하는 게 지금도, 앞으로도 트레바리의 목표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가 우리의 모토다. 구체적인 시점은 장담할 수 없지만 국내 사업이 성장하면 글로벌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