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SMIC 공장 내부 모습. /SMIC 제공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3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 숙련 공정에 사용되는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를 사들이며 반도체 양산 내재화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제재로 미세 공정에 꼭 필요한 극자외선(EUV) 장비 구입이 불가능해지자 숙련 공정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동시에 일본에서 나오는 중고 반도체 장비도 쓸어가는 등 반도체 장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 SMIC는 최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과 DUV 노광 장비의 납품 계약을 2022년으로 연장하고 DUV 장비 수입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중국 경제일보는 "중국이 극자외선(EUV) 장비를 수입할 수는 없지만, 그 외 장비는 모두 수입하고 있다"라며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SMIC는 숙련 공정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ASML의 DUV 장비 수입 규모를 늘리고 있다"라고 했다.

SMIC는 올해 초부터 DUV 장비 구입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ASML과 협상을 진행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장비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DUV 구입에 차질을 빚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 대상에서 DUV 장비가 빠져있다는 점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SMIC는 ASML와 DUV 장비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현재 ASML 매출의 30%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 가운데 대부분이 SMIC의 DUV 장비 대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ASML이 생산하고 있는 DUV 장비 NXT 2000i 소개 자료. /ASML 제공

DUV 장비는 빛을 이용해 웨이퍼에 전자회로를 새기는 장비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공격적으로 들여오고 있는 EUV 장비의 구형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는 전자회로의 선폭이 짧을수록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전기회로를 넣을 수 있어 성능이 좋아진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미세회로 공정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노광 장비의 해상도에 따라 전자회로 선폭이 결정된다.

10㎚ 이하 공정에 사용되는 EUV 장비와 달리 DUV 장비의 해상도는 30㎚ 이상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은 전력반도체(PMIC), 자동차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숙련 공정에 주로 활용됐다. 그런데 반도체 제조사들이 DUV 노광 공정을 2~4번 반복하는 더블패터닝, 쿼드러플패터닝 기술을 개발하면서 DUV 장비로 10㎚대 제품까지 생산 가능한 상태가 됐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도 DUV 장비를 활용해 10㎚ 이상 제품을 만들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EUV 장비 수입이 금지되면서 첨단 공정 경쟁에서 숙련 공정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기술 수준이 높고 수익성이 좋은 10㎚ 이하 제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된 만큼 전략을 바꿔 전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73%(트렌드포스 지난해 말 기준)를 차지하는 14㎚ 이상 반도체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SMIC를 앞세워 반도체 내재화에 집중하고 있다. /SMIC 트위터 캡처

SMIC는 2023년까지 110억달러(약 13조원)를 들여 선전과 상하이 등에 숙련 공정 생산 라인을 증설하기로 했다. 경제일보는 "중국 업체들이 사용하는 ASML의 DUV 관련 장비만 1000대에 육박한다"라며 "SMIC로 대표하는 중국 업체들과 대만 미디어텍, 뱅가드국제반도체(VIS), 파워칩 등의 숙련 공정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중국 업체들은 시장에 나온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중고 장비도 쓸어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SMIC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에 나온 중고 반도체 장비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라며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된 올해 초부터 시작됐고,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

한편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은 역대 최고 규모인 1030억달러(약 122조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710억달러(약 84조원) 대비 44.7% 증가한 규모다. 중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도체 장비 투자 1위 지역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