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은현

내년 9월부터 국내 스마트폰에도 e심(embedded SIM·eSIM)을 쓸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 수년 전부터 서비스되던 e심이 'IT 강국'이라는 국내에서 이제 시작된다는 것이다. 매출 타격, 사업 입지 약화 등을 우려해 통신 3사가 적극적으로 e심 도입을 막아왔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e심은 단말기 메인보드에 심이 내장돼 있는 것을 말한다. 사용자가 별도로 구입해 스마트폰에 삽입하는 물리적 형태의 기존 유심(USIM)과 달리 이용자 정보를 단말기에 다운로드 받는 방식으로 휴대폰 번호와 통신사를 변경할 수 있다. 굳이 스마트폰을 2개씩 사지 않아도 유심·e심을 듀얼로 사용해 하나의 단말기로 2개 번호를 쓸 수 있게 된다. 일상용·업무용, 국내용·해외용 등 용도를 분리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2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e심 도입에 통신사가 난색을 보여온 이유는 우선 유심 판매 수익 감소가 꼽힌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유심칩 가격은 7700원 정도이지만, 실제 원가는 1000~3000원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알뜰폰 1000만 가입자 달성을 기념하며 격려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스마트폰 개통에 있어 주도권이 통신사에서 소비자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통신사가 제공하는 지원금에 단말기 제조사의 영업지원금을 얹은 스마트폰을 구입해 왔다. 통신사나 제조사 입장에선 팔기를 원하는 스마트폰 기종에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얹어 이를 영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용자가 희망하는 스마트폰을 온라인으로 구입, e심을 내려받는 방식이 가능해지게 된다.

통신업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자급제폰 구입에 있어 가장 큰 진입장벽 중 하나가 소비자가 유심을 따로 사 휴대폰에 스스로 꽂아야 한다는 점이었다"라면서 "e심은 칩이 살 때부터 스마트폰에 내장돼 있고 간편히 내려받기만 하면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주도권이 통신사업자에서 완전히 소비자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통신사 입장에선 영업으로 판매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만큼 그 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번호 이동 경쟁이 심화하고, 통신사가 아닌 비대면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해 온라인으로 개통하는 알뜰폰 트렌드가 확산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알뜰폰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정부 방침과도 부합한다.

스마트폰 e심은 세계이통사연합회(GSMA) 주도로 2016년부터 표준화 규격이 발간됐으며,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69개국 175개 통신사가 서비스 중이다. 주로 미주·유럽 등에서 주력으로 부상 중이며, 일본·중국도 일부 통신사가 e심을 서비스하고 있다. 국내는 알뜰폰 사업자인 KCT(티플러스)가 지난해 7월부터 이런 서비스를 도입 중이나 존재감이 미미한 상태다. 통신 3사는 2018년부터 유심을 꽂는 데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는 스마트워치에만 한정해 e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