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소비자가전(CE)과 정보기술·모바일(IM)부문을 DX(Device eXperience)부문으로 합친 데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뉴 삼성'의 방향성이 녹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의미하는 생태계에 기업 미래의 방점을 찍었다는 의미다.

동시에 삼성전자는 생태계의 연결 매개로 로봇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번 조직개편에 로봇 사업팀을 부각시킨 부분은 '삼성 생태계론(論)'을 완성하기 위한 회사의 의도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그리고 있는 가전・IT 생태계. 냉장고가 조리기기에 재료에 적합한 조리 온도와 시간을 제안한다. /삼성전자 제공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새로 출범한 DX부문은 영상디스플레이(VD), 생활가전, 의료기기, 모바일경험(MX·기존의 무선사업부), 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여러 기기에 대한 소비자 경험을 전담할 부서로 CX(소비자경험)·MDE(멀티디바이스경험)센터도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이전부터 가전을 비롯한 여러 기기를 한데 묶어 사용자 경험 기반의 생태계로 나갈 것임을 여러 차례 암시해왔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1에서 밝힌 '모두를 위한 보다 나은 일상'이라는 전시 주제도 이런 과정 중 하나로 읽힌다. 당시 승현준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은 "삼성은 '중요해진 집과 집안의 새로운 기술들이 온전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기술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고 했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영상디스플레이와 소비자가전 사업부에 각각 CX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과거 상품전략이나 기획팀 등으로 불려왔던 생산자 관점의 조직이 소비자 성향 변화에 따라 '경험'을 중시하는 조직으로 변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웨어러블과 TV 등으로 건강 관리하고 있는 사용자. 이런 사용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삼성전자 생태계의 목표다. /삼성전자 제공

가령 예전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TV,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에어컨 등은 모두 개별 제품으로 존재했다. 제품 간 전혀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 때문에 이 제품들을 구매할 때, 꼭 삼성의 것을 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과 TV를 오가며 동영상을 즐기고, 세탁기 코스도 스마트폰으로 설정하며, 냉장고 내 식자재의 상태까지 스마트폰을 통해 관리한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는 상호 작용하면서 집안의 공기질을 높이고, 로봇청소기가 애완동물을 보살피며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낸다. 또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건강관리를 하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삼성전자는 가전·IT 생태계를 위해 '비스포크'라는 강력한 디자인 세계관을 제품에 부여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런 점에서 비춰봤을 때, 삼성 제품을 모두 사용하는 것과 개별 브랜드의 제품을 따로 사는 것은 생태계 구성에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결성을 위해 가전, 혹은 모바일 기기 모두를 삼성의 것으로 쓸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스포크'라는 강력한 디자인 세계관까지 부여하면서 제품 사용 경험은 극대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생태계 구성의 몇 가지 기술 요소로 세트(완성품)과 네트워크, 인공지능(AI) 등을 꼽아왔고, 관련 조직도 모두 DX부문에 포진했다. 여기에 조직개편을 통해 '로봇사업화 태스크포스(TF)'를 '로봇사업팀'으로 격상, 로봇을 추가했다. 가전·IT 생태계를 연결하고, 구성하는 매개로 가정용 로봇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CES에서 선보인 삼성봇 핸디. 싱크대의 오염된 그릇을 식기세척기로 옮기는 등의 역할을 하는 가정용 로봇이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지난 1월 CES에서 소개한 팔이 달린 이동형 로봇 '삼성봇 핸디'는 물체를 인식하고, 잡거나 옮길 수 있어 식사 전 테이블 정리나 식기 정리 등 다양한 집안일을 수행한다. 당시 시연 영상에서도 설거지통에서 오염된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는 장면을 연출했다.

향후 삼성전자가 생태계에서 로봇의 역할을 더 확장한다면 삼성봇 핸디가 냉장고 속 식재료를 조리기기인 큐커에 넣어주고 실제 음식을 만든다거나,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 건조기 등으로 옮기는 등의 미래 생활상을 그려 볼 수 있다. 또 집안의 더러운 곳이 있으면 로봇 청소기에 청소를 명령하고, 함께 선보인 '삼성봇 케어'는 노약자와 가족 구성원들의 일정관리, 건강, 교육, 업무, 경비 등도 척척 해낸다.

결국 삼성전자가 바라는 가전·IT 생태계는 모든 기기와 모바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를 이루고 이 구성의 화룡점정으로 로봇을 활용하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봇 핸디와 삼성봇 케어 등 현재 연구개발 중인 모든 로봇에 행하는 동작은 사용자의 모바일 기기, 가전 등과 연결되며, 이는 삼성 생태계의 한 축으로 존재하게 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