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디지털트윈 도시(도시 단위 고정밀 지도)를 구현한다고 1일 밝혔다. 고정밀 지도는 도시 속 실제 건물 면적과 높이, 도로 폭, 차선 위치, 교통 상황 등과 그 변화를 실시간, 3차원으로 반영한다.

디지털트윈은 현실의 사물, 기계, 설비, 건물, 교통망, 도시 등의 물리적 특징을 가상공간에 그대로 복제하는 기술이다. 사물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까지 모방한다.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가 현실과 별개의 가상공간 속에서 비대면 회의, 게임 등을 서비스하는 게 목적이라면, 디지털트윈은 기업·기관이 현실의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가상에서 실시간으로 얻고 미래를 예측하도록 돕는 B2B(기업 간 거래) 서비스 제공이 목적이다.

도시 단위 고정밀 지도는 네이버가 상용화를 준비 중인 디지털트윈 서비스의 하나다. 길찾기 용도로 쓰이는 일반적인 지도와 달리, 도시 정책을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 건물과 도로를 만드는 건설사와 건축가, 복합쇼핑몰 사업자, 자율주행차 사업자 등 도시 속 정보가 필요한 기업·기관이 활용할 전망이다.

네이버랩스가 국내에서 개발 중인 디지털트윈 기술 기반 고정밀 지도. /네이버랩스 제공

◇ “아크버스, 네이버 글로벌 사업의 주요 축… 日 이어 유럽 진출할 것”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 ‘네이버 밋업’에서 디지털트윈 기술 집합 ‘아크버스’를 소개하고 관련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트윈 구현을 위해선 실제 사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가상공간에 옮기는 데 필요한 사물인터넷(IoT), 로봇, 자율주행,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신기술을 총동원해야 하는데, 네이버는 관련한 자사 기술을 아크버스로 이름 붙였다.

석 대표는 “네이버랩스는 고정밀 지도 구축을 위해 다수의 항공사진을 찍어서 얻는 2차원 이미지들을 3차원으로 복원하는 기술을 쓴다”라며 “라이다(LiDAR) 센서 등을 활용한 노동집약적인 방식으로 3차원 이미지를 얻는 경쟁사들보다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소프트뱅크도 우리의 이런 기술이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협력을 결정했다”라고 전했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 /네이버랩스 제공

양사 협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디지털트윈으로 복제할 도시를 선정하기 위해 양사가 논의 중이며 내년 중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첫 디지털트윈 도시가 나오면 일본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유럽으로도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석 대표는 “일본을 시작으로 사업을 전 세계로 확장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네이버랩스 인력과 현지 투자사가 있는 유럽이 진출하기에 가장 좋은 시장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디지털트윈은) 네이버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또 하나의 사업 방식이자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와 협업해 강남 일부 지역의 61㎞ 구간 고정밀 지도를 만들었다. 석 대표는 국내 100대 기업 중 60% 가까이 고객사로 둔 네이버클라우드와 협력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네이버의 디지털트윈 사업이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자신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마찬가지로 엔터테인먼트, 부동산, 모빌리티 등 사업과 시너지를 위해 다양한 내외부 관계자들과 논의 중이다.

네이버랩스의 실내 맵핑(지도제작) 기술. /네이버랩스 제공

네이버는 도시뿐 아니라 현실의 실내 구조를 모방한 건물 단위에서도 디지털트윈 사업을 준비 중이다. 첫 무대는 내년 문을 열 자사 제2사옥이다. 제2사옥의 디지털트윈을 만들고 그 속에서 건물 관리나 실무에 필요한 일을 제어하겠다는 것이다. 가상건물에서의 명령을 현실에서 수행할 브레인리스(두뇌를 직접 장착하지 않고 클라우드에 두는) 로봇들이 건물에 상주한다. 단순하게는 직원이 가상건물 속 자기 자리로 커피를 주문하면 현실에서 로봇이 실제로 배달해주는 식이다.

네이버는 디지털트윈 건물도 B2B 사업 모델로 구상하고 있다. 석 대표는 “네이버 제2사옥이 개소하면 이런 형태의 건물을 지으려는 기업들이 생겨날 것”이라며 “자세한 건 내년 제2사옥 개소 때 설명하겠다”라고 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과도 협업해 비대면으로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는 가상의 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 새로운 플랫폼 사업…MS·아마존과 선점 경쟁

디지털트윈은 국내외 정보기술(IT) 대기업 주도로 새로운 플랫폼 사업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을 인용한 자료(디지털트윈 활성화 전략, 지난 9월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트윈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조5000억원에서 오는 2026년 54조2000억원으로 연평균 57.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시장은 지난해 690억원 규모에 그쳤지만 전 세계 성장률을 웃도는 연평균 70%의 가파른 성장이 기대된다.

해외에선 마이크로소프트(MS)가 먼저 시장 진출에 나섰다. 지난 9월 조선비즈 주관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 2021′에서 자사 디지털트윈 기술을 도입한 글로벌 맥주 제조업체 ‘앤하이저부시인베브(ABInBev)’의 사례를 소개했다. ABInBev는 맥주가 만들어지고 운송되는 모든 과정을 데이터화하고 가상의 공장에서 가상의 완제품(맥주)을 만들어 품질을 평가, 품질과 제조효율을 높이도록 공정을 재설계하는 데 MS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맥주 제조업체 앤하이저부시인베브(ABInBev)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솔루션으로 구현한 메타버스 맥주 공장. /유튜브 캡처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이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콘퍼런스 ‘AWS 리인벤트(re:Invent) 2021′ 기조연설에서 ‘IoT 트윈메이커’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기업이 디지털트윈 구현에 필요한 기술과 인프라를 제공하는 B2B 서비스다. AWS는 캐리어, 지멘스, 엑센츄어 등 업체들이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했다.

국내에선 이동통신 3사와 현대차·포스코 등 제조 대기업이 기술 개발에 나섰다. SK텔레콤은 지난 9월 다쏘시스템, 슈나이더일렉트릭, AWS 등과 ‘디지털트윈 얼라이언스(연합)’를 출범하고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구독형 디지털트윈 서비스 개발에 기술력을 모으고 있다. 현재 30여개 파트너사가 얼라이언스에 합류했다고 SK텔레콤 관계자는 전했다.

KT는 2019년 수도권의 교량(다리)을 디지털로 복제해 붕괴 위험 등 위험도를 미리 진단하는 디지털트윈 서비스 ‘기가트윈’을 선보였다. KT는 이 기술을 고객사의 건물을 관리하는 서비스로 확장시키고 있다. ‘미니클론’이란 특허 기술을 통해 건물 내 설비 약 380종을 미리 유형화함으로써 2주 만에 디지털트윈을 구현해 제공할 수 있다고 KT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의 10대 대표과제 중 하나로 디지털트윈을 선정,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KT 직원들이 '기가트윈'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시설물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K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