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 안에서 괴롭힘이 발생했고 그것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다면 이것은 회사 전체적인 문화의 문제이며, 한두 사람의 징계 수위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이사회가 경영진에게 제안한 것처럼 권한이 더욱 분산되고 책임이 더욱 명확해지고 더 젊고 새로운 리더들이 나타나서 회사를 이끄는 전면 쇄신을 해야하는 길이 그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6월 말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최고투자책임자(GIO)가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 사과문의 일부다. 그는 5월 말 한 직원이 오랜 직장 내 괴롭힘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조직 문화에서 비롯했다고 보고, 젊고 새로운 리더가 이를 해결할 열쇠라고 진단한 바 있다.
네이버 이사회가 17일 한성숙 대표에 뒤를 이을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1981년생 최수연(40) 글로벌지원담당 책임리더를 깜짝 발탁하면서 이 GIO의 조직쇄신 카드가 실제 효력을 발휘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과거 김상헌 전 대표 때처럼 외부 전문가를 전문경영인으로 발탁하거나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CFO), 신중호 라인 공동대표 등 이 GIO의 최측근이자 오늘날 네이버를 만든 공이 큰 주요 인물이 CEO 유력 후보로 오르내렸었다.
하지만 기존의 리더십으론 조직 쇄신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사내기업(CIC·company in company) 대표를 맡고 있는 김승언 아폴로CIC 대표, 이윤숙 포레스트CIC 대표, 정석근 클로바CIC 대표 등까지 후보군의 범위가 넓어졌다. 이 GIO는 이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책임리더급에서 새 피를 전격 발탁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네이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C레벨에서 차기 CEO 발탁했다면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해나갈 수는 있겠지만, 조직 전체를 변화시키겠다는 당초 경영진 교체 취지에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만큼 이 GIO가 '경험'보단 '상징성'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최수연 CEO 내정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 네이버(당시 NHN)의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커뮤니케이션, 마케팅팀에서 근무했다. 이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재직 중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인수·합병(M&A), 자본시장, 기업 지배구조, 회사법 일반 분야에서 경력을 이어가던 중 2019년 네이버에 다시 합류해 글로벌 투자를 총괄하는 이 GIO를 지원하며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이버 측은 이사회가 그간 최 내정자가 다양한 국내·외 사업 전반을 지원하며 보여준 문제해결 능력, 회사의 글로벌 사업 전략, 해당 시장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또 회사 안팎의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후보자라고 판단했다고도 했다. 최 내정자는 내년 3월 열리는 주주총회, 이사회 결의를 거쳐 차기 대표이사로 최종 선임된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내부 승진이지만, 근무 경력이 짧은 만큼 이 GIO 측근으로서 일종의 특혜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앞으로 얼마만큼 조직을 장악하고 리더십을 보일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업계에서는 이 GIO가 글로벌 사업 등 주요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는 만큼 최 내정자가 CEO로서 연착륙하는 데 큰 무리가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