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내년 상반기 3㎚(나노미터·10억분의 1m) 미세공정 양산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가운데, 첫 고객이 어느 회사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반도체 업계는 최근 파운드리 1위 TSMC의 애플 우선 정책에 따라 가격 차별을 받고 있는 AMD나 퀄컴이 삼성전자 3㎚ 공정의 첫 고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TSMC-애플 동맹에 대항하는 삼성전자-AMD·퀄컴의 신(新)동맹이 결성되는 셈이다.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인 AMD와 퀄컴은 지나치게 애플에 호의적인 TSMC에 불만이 커 10㎚ 이하의 반도체 칩을 생산할 파운드리 회사를 바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TSMC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PC나 태블릿,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나 자동차 관련 반도체 주문이 몰리자 여러 차례 공급가격을 조정했는데, 지난 9월 AMD와 퀄컴 등 주요 팹리스도 예외 없이 20%가량의 가격 인상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TSMC는 애플에 공급가격을 2~3% 올리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플이 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채용한 아이폰13의 가격을 전작인 아이폰12와 바꾸지 않은 것은 이런 공급망에서의 원가 부담이 낮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애플의 자체 칩 2종 'M1 프로' 'M1 맥스'. TSMC에서 만들어진다. /애플 제공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10㎚ 이하 미세공정으로 만든 반도체가 필요한 회사는 현재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구글 등 소수고, 10㎚ 미세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는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이 가운데 애플은 TSMC와의 결속이 높아지고 있어 파운드리를 변경할 가능성은 작은 편이다. 이 때문에 TSMC가 미국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애플과의 연관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엔비디아는 이미 그래픽처리장치(GPU) 대부분을 삼성전자에 맡기고 있다.

AMD와 퀄컴은 TSMC와 삼성전자 가운데 TSMC 비중이 높았고, 특히 AMD의 경우 10㎚ 이하 미세공정의 상당수를 TSMC에 맡겨 왔다. 그러나 AMD는 올해 초부터 5㎚ 이하 공정 파운드리를 다변화하겠다는 전략을 검토 중에 있고, 그런 와중에 TSMC의 가격 정책에 불만을 가져 삼성전자로 물량을 옮기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AMD는 삼성전자와의 친밀도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2200(가칭)에 AMD의 GPU가 장착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전 제품 엑시노스 2100에는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의 GPU를 썼으나, 성능에 다소 아쉬운 부분이 생겨 차기작에는 AMD의 제품을 사용한다.

퀄컴의 경우에도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AP를 공급하고 있어 삼성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다음 달 초 발표 예정인 최신 AP 스냅드래곤 898(가칭)도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S22(가칭)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퀄컴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갤럭시용 AP 생산만 주문하고 있는데, 이번 TSMC와의 갈등으로 물량 비중을 더 높일 가능성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곧 떠나는 미국 출장길에서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를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사장은 지난해 엑시노스 2100을 발표하면서 차기작부터 AMD와 협업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유튜브

삼성전자는 3㎚ 양산을 통해 이런 글로벌 빅 팹리스 고객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3㎚ 양산은 TSMC의 계획보다 수개월 앞선 것으로, 반도체 업계는 이런 선도적인 움직임이 고객 유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업계 관계자는 “10㎚ 공정 이후 TSMC를 따라가는 입장이었던 삼성전자가 3㎚를 계기로 업계 주도권을 쥐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나노시트 구조를 적용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3㎚ 공정에 업계 최초로 활용한다. 이 경우 기존 핀펫(FinFET) 기반의 5㎚ 공정에 비해 성능은 30% 향상되고, 전력소모는 50% 줄어들며, 칩 면적은 35%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2025년부터 적용되는 2㎚ 공정에서는 이보다 앞선 3세대 GAA를 도입한다.

반면 TSMC는 3㎚에 핀펫 구조를 그대로 쓴다. 다만 양산 난이도가 높아 원래 계획보다 양산 시기를 연기했다. 내년 7월쯤 램프업(장비 설치 이후 본격 양산까지 생산능력을 높이는 것)을 시작한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5㎚에 비해 3㎚가 3~4개월 정도 늦는다”라며 “3㎚ 기술이 매우 복잡해 내년 하반기(7월) 양산을 결정했다”고 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3㎚ 고객사와 관련해 정보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동연 KG증권 연구원은 “파운드리 중심의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가 기존 계획 대비 3~4년 앞당겨졌다”라며 “(삼성전자는) 새로운 구조인 GAA를 선제 적용한 3㎚를 내년부터 본격 양산해 TSMC, 인텔 대비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점유율 확대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