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월트디즈니컴퍼니(디즈니)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한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 등 대작을 꾸준히 발굴하며 글로벌과 한국 시장 1위를 지키려 한다. 아직 글로벌 진출도 못 한 웨이브, 티빙, 시즌 등 토종 OTT의 국내 입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두 공룡에 맞서기 위해 토종 OTT가 준비해야 할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조선비즈는 15일 양대 토종 OTT 티빙과 웨이브의 출범을 모두 주도했던 김종원 작가와 인터뷰해 이 물음의 답을 구했다.
김 작가는 2010년 CJ헬로비전 티빙사업실장을 맡아, ‘언제 어디서든 PC로 볼 수 있는 TV’라는 콘셉트로 티빙을 기획하고 출시했다. 티빙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후 2014년 SK브로드밴드의 러브콜을 받고 이직, 미디어사업본부장(상무)을 지내며 2016년 웨이브의 전신인 ‘옥수수’를 출시하고 사업 운영을 총괄했다. 현재 SK브로드밴드 임원을 지내며 ‘제레미’라는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저서 ‘디즈니플러스와 대한민국 OTT 전쟁’을 출간했다.
김 작가는 ▲‘한류 동맹’을 통한 해외 플랫폼 단일화 ▲TV 이용층을 겨냥한 요금제 개편 ▲자사 콘텐츠를 넷플릭스가 아닌 자사 OTT로 독점 유통하는 탈(脫)넷플릭스 전략 검토 등 3가지를 토종 OTT의 생존전략으로 제안했다.
◇ “해외 이용자 확보가 급선무…한류 동맹·플랫폼 단일화 필요”
김 작가는 먼저 “토종 OTT가 국내에선 지금처럼 서로 경쟁하더라도 해외에선 한류 동맹을 맺고 뭉쳐야만 살 수 있다”라며 “최근 ‘오징어게임’으로 한 번 더 증명됐듯, 한류 콘텐츠는 토종 OTT의 해외 사업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다”라고 했다. 그는 “해외 한류 팬을 얼마나 구독자로 확보해 플랫폼 규모를 불릴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국내에서처럼 토종 OTT끼리 구독자 빼앗기 경쟁을 벌인다면 승산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동안 업계에선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월 구독자가 각자 200만~300만명 수준인 양사가 2억명의 넷플릭스, 1억2000만명의 디즈니플러스에 맞서기엔 역부족이란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 구독자가 많을수록 같은 콘텐츠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많아지고, 다시 그 수익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제작비 규모도 커지는 만큼, 구독자 수는 OTT의 체급으로 비유되곤 한다.
체급이 달리는 상황에서도 티빙과 웨이브는 각각 모회사인 CJ ENM과 지상파 3사·SK텔레콤의 이해관계로 인해 합병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 이르면 2023년 동남아, 일본 등에 진출할 계획을 가진 양사가 현지에서도 한류 팬을 두고 ‘내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류 동맹은 양사가 한류 팬 유치라는 공동의 목표를 먼저 달성할 수 있도록 해외에서만이라도 합작 플랫폼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양사가 콘텐츠 경쟁을 벌이자는 구상이다. 김 작가는 “미국의 OTT 후발주자 NBC유니버셜과 비아콤CBS가 유럽 진출용으로 ‘스카이쇼타임’이란 합작 플랫폼을 만든 사례가 이미 있어, 토종 OTT가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김 작가는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동맹 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4일 디즈니는 다음 달 국내 상륙에 맞춰 아시아 지역 오리지널 콘텐츠 20여편을 공개할 예정이고 이 중 상당수가 한국 콘텐츠가 될 거라고 밝혔다”라며 “한류 팬이 특히 많은 아시아를 겨냥하겠다는 건데, 이에 대응해 티빙과 웨이브가 발빠른 한류 콘텐츠 선점 경쟁에 나설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역시 올해 아시아 콘텐츠 투자액의 절반인 5500억원 정도를 한국에서 투자하기로 했고 ‘오징어게임’ 등을 통해 투자 성과를 내고 있는데, 일각에선 ‘한국 제작산업이 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만큼 한류 콘텐츠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 “美 넷플릭스 이용 70%는 TV…모바일보다 더 비싼 요금제 개편해야”
두 번째 제안은 “모바일뿐 아니라 TV 이용층도 공략하라”는 것이다. 그는 “OTT 이용자들은 대부분 모바일로 구독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바일 대신 TV로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TV 이용층을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구독자 수를 꾸준히 유지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라며 “넷플릭스와 디즈니처럼 토종 OTT도 구독자들이 언제든지 모바일에서 TV로 이용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요금제를 개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2018년 미국 기준으로 넷플릭스 시청 시간의 70%가 TV에서 나왔다.
문제는 토종 OTT의 요금제가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에 비해 TV 이용층 확보에 불리하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국내 기준으로 월 9500원짜리 베이직, 1만2000원짜리 스탠다드, 1만4500원짜리 프리미엄 등 3가지 요금제를 갖고 있다. 세 요금제는 이용 가능한 기기 대수와 지원 화질이 다를 뿐, TV 이용 가능 여부를 두고는 차등을 두지 않는다. 최저 월 9900원의 디즈니플러스 역시 같은 방식이다.
반면 티빙과 웨이브는 월 7900원짜리 베이직 요금제를 통해선 TV 이용이 불가능하다. TV로 이용하려면 1만900원짜리 스탠다드나 1만3900원짜리 프리미엄 요금제로 가입해야 한다. 넷플릭스·디즈니와 달리 티빙·웨이브의 최저 요금제(베이직) 가입자는 요금제 업그레이드가 강요되는 TV 이용에 진입장벽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요금제 개편이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티빙과 웨이브의 콘텐츠는 모바일 플랫폼 출시 전, 인터넷TV(ITPV) 3사와의 계약을 통해 TV 상품으로 먼저 나왔다. 월 1만원이 넘는 TV 상품 출시가 먼저, 월 7900원 요금의 모바일 상품 출시가 나중에 이뤄졌기 때문에, 요금제 개편을 위해선 이해관계자인 IPTV 3사와의 조율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 작가는 “토종 OTT도 TV 요금제 인하의 필요성을 느끼고 IPTV 3사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지만 의사결정이 이뤄지기엔 시일이 더 걸릴 상황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 ‘脫넷플릭스’한 디즈니, 年 7000억 손해봤지만 2위 OTT 키워내
김 작가는 마지막으로 “OTT 경쟁은 콘텐츠 경쟁이고, 콘텐츠 경쟁은 배타적 경쟁이다”라며 “제작부터 유통까지 일원화하는 디즈니식(式) D2C(기업-소비자 직거래) 모델의 도입을 국내 업계도 고려해봐야 한다”라고 했다. OTT의 경쟁력은 경쟁 플랫폼에선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얼마나 가졌는지에 달린 만큼, 한국 기업은 직접 만든 콘텐츠를 자사 OTT에 독점 공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는 2019년 디즈니플러스를 출시하고 자사 콘텐츠의 유통을 이곳에 집중하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해 방송국과 온라인 플랫폼에 팔던 디즈니가 어느 순간 넷플릭스에 종속되고 있다는 위기감에 내린 결단이었다. 연간 7000억원 이상의 넷플릭스 판매 수익을 포기해야 했지만, 결국엔 오리지널 콘텐츠로 무장한 글로벌 2위 OTT를 키워냈다.
현재 토종 OTT의 모회사는 자체 제작 스튜디오를 두고 있지만 넷플릭스 등 자사 OTT 경쟁사에도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김 작가는 이를 두고 “도매와 소매 사업을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비유하며 “당장 제작사업 매출을 올리겠지만 넷플릭스에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과거 디즈니의 고민을 똑같이 겪게 될 것이다. 디즈니의 ‘탈넷플릭스 전략’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마다 내부 사정이 있어 당장 이 모델을 도입하는 게 정답이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D2C 모델이 OTT업계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 “디즈니, 1년 내 韓 시장 20% 이상 가져갈 듯…IPTV 제휴, 수익성 장담 못 해”
김 작가는 “디즈니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후 넷플릭스를 뛰어넘을지는 확실치 않다”라며 “국내 경쟁자가 얼마 없던 2018년 넷플릭스의 국내 상륙 때보단 지금 디즈니의 성장 곡선이 더 완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증명된 콘텐츠 경쟁력이 있고 IPTV와의 제휴를 통해 접근성을 높였기 때문에 국내 상륙 후 1년 이내에 시장 점유율 20% 정도는 가져가지 않을까 한다”라고 했다.
김 작가는 또 LG유플러스의 디즈니플러스 IPTV 제휴에 대해 “IPTV 가입자를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순 있겠지만 그만큼 수익이 늘어날지는 알 수 없다”라며 “제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작가는 “IPTV 사업은 가입자가 여러 콘텐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시보기(VOD) 판매와 홈쇼핑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는데, 늘어난 가입자의 소비가 디즈니플러스에 몰리면 이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라며 “이미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가장 먼저 제휴했을 때 한차례 경험했던 일이다. LG유플러스는 IPTV 3사 중 가입자당 매출(ARPU)이 가장 낮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