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아이템 구매를 유도하는 한국형 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의 비즈니스 모델(BM·과금체계)이 이용자의 피로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임 '리니지'를 통해 이런 과금체계를 시장에 정착시킨 엔씨소프트는 물론이고, 이후 나온 수많은 게임이 비슷한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이용자 비판을 받고 있다. 리니지와 과금체계, 구조 등이 비슷한 게임을 업계에서는 '리니지 라이크(리니지유사)' 게임이라고 부른다. 최근 시장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딘: 발할라 라이징' 역시 '리니지 라이크'로 분류되고 있다.
리니지 라이크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을 쓰면 쓸수록 게임 캐릭터의 능력이 높아지고, 성능이 월등한 아이템을 얻어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페이투윈(pay-to-win)'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류의 게임은 이용자들이 남들보다 강하고자 하는 욕구를 극한에 가깝게 자극하는데, 이용자들은 유료 결제의 순환고리에 빠져 끊임없이 아이템을 사고, 캐릭터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지난 2017년 업계 첫 연간 매출 1조원을 넘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이 당시 매출의 57%를 책임지며 소위 '대박'을 치자 유사한 게임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원조가 리니지라는 점에서 '리니지 라이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업계는 리니지 라이크의 수익 구조가 게임사의 매출을 일정 수준 이상 보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여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리니지M과 리니지2M의 출시 이후 게임사들이 페이투윈 비즈니스 모델을 모바일 게임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6월 출시 이후 줄곧 매출 1위를 달성하고 있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도 전형적인 리니지 라이크 게임으로 분류된다. '페이투윈'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어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유럽의 가면을 쓴 리니지"라는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오딘은 유·무료 캐릭터 강화 아이템의 성능차이를 둬 아이템 구매를 유도한다거나, 아이템의 세부 능력을 결제 전에는 알 수 없게 해 유료 결제를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내용만 다르지, 구조는 같은 '리니지 라이크' 게임을 수년간 내놔 생기는 이용자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엔씨소프트가 올해 출시한 신작의 연쇄 부진도 이런 여론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출시 전부터 기대를 받았던 '블레이드&소울2(블소2)'는 지난달 26일 출시 직후 이용자들로부터 "과도한 과금을 유도한다"며 혹평을 받았다. 엔씨소프트는 출시 이틀 만에 사과문을 올리고 게임 시스템을 개편했다.
앞서 지난 5월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 '트릭스터M' 역시 전작의 인기가 모바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지만, 결과는 '귀여운 리니지'라는 오명이었다. 지난달 30일 기준 트릭스터M은 매출 부문 구글 플레이스토어 42위,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리니지 라이크' 게임에 대한 피로가 높다 보니, 이제는 출시되지 않은 게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직접 '마지막 리니지'라며 기대감을 높인 '리니지W'에 대한 시장의 걱정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문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리니지W' 쇼케이스에서 나타난 핵심 비즈니스모델은 '페이투윈'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변신카드, 마법인형, 아인하사드 등 현재 '리니지M'에서 사용되는 과금 체계가 다수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게임업계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에 대한 이용자 피로가 극심한 것은 게임사의 안일한 대처 때문이라고 본다. 게임사들은 매번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이번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르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막상 출시되면 리니지 라이크를 벗어나기 못했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강해지려면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용자의 흥미를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김영진 청강대 게임학과 교수는 "유료 아이템 구매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게임에 대한 이용자 피로도는 최근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게임성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아 주객전도가 된 상황인데, 일부 게임사는 아예 게임을 수익을 위한 모델로만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용자의 불만과 새로운 수익 구조에 대한 요구는 커지고 있는데, 게임사들은 이런 이용자의 요구를 잘 인식하지 못해 피로감을 더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는 이런 리니지 라이크 게임의 득세는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신규 이용자의 흥미는 반감되고, 구매력이 강한 소수의 이용자만 남아 게임의 수명이 짧아지고, 게임에 들어간 개발비 등은 회수하지 못하며, 위축된 개발 분위기가 다시 이용자를 떠나보내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위 학회장은 "'리니지M', '리니지2M' 등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가 성공한 뒤, 현재 한국형 MMORPG는 확률형 아이템의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들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하고 있다"며 "'오딘'과 '제2의나라'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 이용자는 큰 비용을 투입해 즐기는 소수의 고과금 이용자와 게임을 가볍게 즐기는 다수의 라이트 이용자로 나뉜다"며 "게임에 고과금 이용자만 남게 되면 게임 유지가 되지 않고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