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5G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화웨이·에릭슨·노키아 '3강 체제'가 공고해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시장에서 중국 사업을 따내지 못하며 체면을 구긴 노키아는 최근 처음으로 5G 중국 사업을 수주하며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신장비 시장은 중국 화웨이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에릭슨·노키아가 2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반면 3강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삼성전자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28일 로이터통신과 통신장비업계를 종합해 보면, 중국 3대 통신업체인 차이나모바일이 최근 진행한 2차 5G 장비 입찰에서 노키아는 60억달러(약 7조원) 규모의 계약을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화웨이 등 현지 장비업체가 계약 대부분을 따낸 가운데 전체 4%가량을 외산 장비업체로서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외산업체로 유일하게 수주전에서 성공했던 에릭슨은 2% 정도의 물량만 가져갔다. 화웨이는 60%로 사실상 독점했다.
이를 두고 '중국 수주 제로'였던 노키아가 자존심을 회복했다는 평이 나왔다. 차이나모바일이 진행한 5G 입찰은 유럽 전역에 있는 모든 기지국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규모인 만큼 4%의 점유율도 실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차이나유니콤·차이나텔레콤 5G 수주전에서도 노키아 수주가 확실시되고 있다. 오는 29일(현지시각)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노키아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연초 대비 회사 주가는 60% 가까이 오른 상태다. 연간 실적 전망치 역시 상향조정될 전망이다.
노키아의 선전은 지난해 8월 부임해 가격·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린 페카 룬드마크 최고경영자(CEO)의 성과로 풀이된다. 그는 5G 시장 주도권을 다시 잡겠다며 '무엇이든 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밝힌 뒤 수천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기술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등 잰걸음을 했다. 비용 절감을 통해 자체 칩인 '리프샤크' 투자에도 상당액을 투입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에릭슨의 본국인 스웨덴 등 유럽에서 반(反)화웨이 움직임이 확산하는 분위기가 노키아를 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통신장비 업계 관계자는 "스웨덴의 화웨이 장비 금지 조치가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실제 지난해 말 뵈르예 에크홀름 에릭슨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전역에서 확산하고 있는 '화웨이 금지령'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5G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사업 위축을 우려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는 "화웨이 장비를 5G 통신 네트워크에서 금지한 스웨덴의 결정이 자유경쟁 무역을 제한하고 신기술 출시를 지연시킨다"라며 "에릭슨과 스웨덴에 있어 자유경쟁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했었다.
2022년 전 세계 5G 본격 투자에 맞춰 최근 이례적으로 통신장비를 담당하는 네트워크 사업부가 별도 행사까지 열어가며 기지국용 핵심칩·솔루션을 대거 공개하는 승부수를 띄우고 3위권 추격을 노렸던 삼성전자로선 녹록지 않은 분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7.1%로 화웨이(31.4%), 에릭슨(28.9%), 노키아(18.5%)에 뒤를 이은 4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중국 ZTE 제외).
업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3강과 어려운 전쟁을 하고 있다"라면서 "한 번 투자를 결정하면, 세팅뿐 아니라 운영·보수까지 해 가며 오랜 시간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는 보수적 통신시장에서 새로운 시장을 뚫기 위해 저가 수주하고 지원 인력까지 두는 것은 삼성 자체로 봐도 큰 리스크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