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텔아비브 라맛 간. 이곳에 우뚝 솟은 BSR 빌딩1을 찾았다. 이 빌딩 14층에 있는 이스라엘 투자회사 요즈마그룹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요즈마그룹은 1993년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만든 벤처캐피털(VC)에 기반한다. 정부가 40%(1억달러), 해외 투자 등 민간이 60%(1억6500만달러)를 투자해 이스라엘의 벤처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조성한 것이다. 이른바 요즈마 펀드였다. 요즈마는 히브리어로 ‘창의’, ‘시작’이라는 뜻이 있다.
요즈마그룹과 그룹이 운영하는 펀드는 당시 창업국가로 나서려던 이스라엘에 있어 혁신기업의 씨앗으로 작용했다. 설립 후 15년간 수많은 이스라엘 기업에 자금이 쓰였고, 이 가운데 20개 이상의 기업이 미국 나스닥 시장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이날 빌딩 14층 자신의 요즈마그룹 집무실에서 기자를 직접 맞이한 이갈 에를리히(81) 요즈마그룹 회장은 “모태펀드로 시작한 우리 회사는 1998년 이스라엘 최대 산업 및 금융 그룹 중 하나인 오페르그룹에 매각돼 민영화했다”라며 “2014년까지 큰 3개의 펀드(요즈마 펀드1·2·3)를 운영하면서 회사에는 유보 자금이 쌓였고, 펀드를 청산한 뒤 고유자산투자 즉, ‘패밀리오피스’로 전환하게 됐다”고 했다. 패밀리오피스는 개인 자산 등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자기자본투자(PI)’를 하는 회사다. 현재도 미노비아테라퓨틱스(바이오테크), 자벨린 메디컬(생명과학) 등 이스라엘 기업 몇 군데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에를리히 회장은 “요즈마 펀드를 만든 목적은 당시 창업국가가 아니었던 이스라엘에 외국계 자본을 유치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였다”라며 “모태펀드를 만들어 해외 자금을 유치하고, 이스라엘 벤처 기업이 성공을 거두면 더 많은 돈이 다음에 모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이스라엘이 혁신국가로 거듭나게 되면서 이스라엘에 많은 투자금이 몰렸고, 이제는 모태펀드가 필요 없게 됐다”며 “그래서 펀드를 모두 청산하고, 개인 투자로 돌리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 한 언론사의 ‘유령회사’ 보도…”엄청난 금전적 손해 입어”
최근 요즈마그룹은 ‘실체’ 논란에 휘말렸다. 사무실도 없고, 직원도 적은 유령회사라는 것이다. 국내 한 언론사는 요즈마그룹 홈페이지 등에 기재된 주소에 사무실이 없고, 아시아 사업을 총괄한다는 홍콩 사무소는 아파트에 있다고 보도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해당 보도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고, 화가 났다”라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을 표한다”라고 했다. 그는 “방송 내용을 모두 봤는데, 허위적 보도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라며 “우리는 해당 방송사의 취재 전에 충분한 답변과 해명, 자료를 보냈지만 악의적 편집이 된 것에 대해 이 또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에 1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소송을 진행한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번 소송은 특정 언론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발이지만, 이와 동시에 불공정하고, 왜곡된 보도가 신용이 생명인 회사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다”며 “회사는 앞으로도 정해진 대응 방침에 따라 명예와 신용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했다.
요즈마그룹이 부산시와 맺은 투자 업무협약(MOU)에 대해서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와 함께 조성하기로 한 1조2000억원의 투자금은 모두 부산시민의 세금이고, 이 막대한 자금이 유령회사인 요즈마그룹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에를리히 회장은 “부산시와 논의했던 창업 펀드의 재원은 민간자본이다”라며 “투자금 1조2000억원 중 세금이나 기금 등 어떤 형태로든 공적 자금이 들어가는 일은 없다”라고 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요즈마그룹코리아(요즈마그룹의 한국법인)는 2018년부터 부산지역 스타트업 육성사업을 위해 이를 준비해 왔는데, 시작도 전에 예측 불가능한 이슈(관련 보도)로 막대한 신뢰 손상과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됐고, 이제 사업 방향은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구체적인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에를리히 회장은 “부산시와는 별개로 우리 회사의 자체 계획에 따라 부산 소재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 계획은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 이스라엘의 기술과 한국의 제조 기반에 주목…”한-이 시너지 엄청날 것”
요즈마그룹은 한국 사업을 위한 요즈마그룹코리아를 지난 2015년 설립했다. 한국에 주목한 이유는 여러모로 이스라엘과 한국이 상승효과(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창업 국가지만, 작은 내수시장으로 제조기술과 기반이 부족했고, 우리가 펀드를 통해 키운 혁신기업은 개발한 기술로 제조 사업을 하기보다 글로벌 기업에 입수합병(M&A)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으로 남게 됐다”라며 “현재 이스라엘은 무려 400여개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가 있는데, 이들은 본연의 목적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기업을 M&A 하려는 목적도 있다”라고 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미 한국의 제조와 수출 역량은 세계가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이스라엘 기업이 이런 기술을 (미국 등에) 매각하지 않고, 한국 기업과 합작해 한국에서 생산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면 한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기업에도 큰 혜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에를리히 회장의 구상이 실제화한 것이 바로 ‘나녹스’다. 의료 영상진단 기술 기업 나녹스는 독자 디지털 엑스레이 기술을 보유 중이다. 요즈마그룹과 SK텔레콤, 후지필름, 폭스콘 등이 투자해 큰 관심을 모았으며, 지난해 8월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에도 성공했다. 나녹스는 현재 임시 생산 시설을 충북 청주에 꾸리고 있는데, 올해 초 440억원들 들여 경기 용인시 반도체클러스터 부지 1만2000㎡를 매입해 생산기지를 짓고 있다. 에를리히 회장은 “제조 기술이 필요하던 나녹스는 원래 일본에 공장을 세울 예정이었다”라며 “하지만 우리가 설득해 한국에 공장을 지었다”고 했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설립 뒤 곧바로 한국 스타트업 등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수년간 큰 활동이 없었다. 이에 대해 에를리히 회장은 “우리는 외국 투자 회사로, 한국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언어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한국의 네트워크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참 힘들다”라며 “한국법인은 설립 이후 시장을 공부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투자를 바로 시작하는 것은 매운 어려운 일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로서는 다양한 기술과 벤처를 쉽게 발굴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8개의 대학, 17개의 지방자치단체 및 기관 등과 MOU를 체결한 것”이라고 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MOU는 외국계 투자 회사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면서도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한 좋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MOU를 맺은 지역과 연구소, 대학 등이 계속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벤처 기업을 소개해 주고 있다”라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 2019년 요즈마의 직접 투자를 받은 곳이 바로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 소니스트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 기반 만성 폐 질환자를 위한 호흡재활 운동 애플리케이션(앱) ‘스피리츠’를 개발했다. 앞서 2018년 경상북도와의 MOU로 2019년 진행한 ‘경북 혁신벤처엑셀러레이팅 사업’에 참여한 모바일 상품권 플랫폼 플랫포스는 요즈마 육성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카카오벤처스, 네이버, KB금융으로부터 라운드 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최근 연세대학교(CK리제온), KAIST와의 사업 논의를 구체적으로 준비 중이다. 올해 7월 기준으로 요즈마그룹코리아의 누적 투자운용액은 2250억원에 달한다.
◇ K-바이오에 집중 투자…”한-이스라엘 FTA는 새로운 기회”
요즈마그룹은 바이오산업을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투자 활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약 개발 전문기업 바이오리더스에 투자했고, 또 와이즈만 연구소가 가진 기술을 이전했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남쪽 22㎞에 있는 교육도시이자 전원도시인 르호보트에 위치한 세계 3대 기초 과학 연구소로, 기술 이전으로 42조원의 파생 매출을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연구소로도 유명하다. 이 연구소의 한국 기술이전 사업권이 요즈마그룹에 있다. 에를리히 회장은 “와이즈만 연구소장을 만나 미국과 유럽만 가지 말고, 한국이 임상 실력도 좋고 우수한 의사도 많으니 기술 이전을 담당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바이오 인공지능(AI) 벤처 신테카바이오와 세포치료제 전문기업 SCM생명과학에 투자해 코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고, 바이오마커 기술기반 웰마커바이오, 신호전달계 신약개발기업 CK리제온 등에 투자했다”라며 “최근에는 의료 AI 전문 데이터라벨링 기업 인그래디언트에 투자를 집행하면서 직접 만나 해외진출 비전에 대해 듣기도 했다”고 했다.
최근 한국과 이스라엘이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요즈마그룹에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에를리히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달 역사적인 FTA 서명식에 나 역시 줌(인터넷 화상회의 플랫폼)으로 참석했다”라며 “FTA를 기점으로 한국과 이스라엘의 유대와 연계가 수립된다면, 두 나라에 엄청난 혜택으로 들어올 것이다”라고 했다.
지난 4월 요즈마그룹은 중견기업연합회와 ‘중견기업 신성장 동력 발굴과 해외진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또 요즈마그룹코리아는 ATU파트너스와 ‘한-이스라엘 중견기업 성장펀드’를 공동 운용하고 있다.
에를리히 회장은 “대략 5000억원에서 1조원의 매출을 내는 한국의 중견 기업들, 주로 대기업의 1·2차 밴더(협력업체)로 제조 기반에 몰두하고 있는 이 기업들이 혁신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가져다 제조로 연결하는 것, 그런 기업을 글로벌로 진출시키겠다는 요즈마의 계획에 있어 한국-이스라엘 FTA는 투자와 사업협력 확대에 긍정적인 기반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