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앱 아이콘. /AP=연합뉴스

구글의 인앱(자체)결제 강제 도입을 막기 위한 ‘구글 갑질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최대 고비였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의 문턱을 8개월 만에 넘었다. 남은 절차는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해 국회 통과는 시간문제인 상황이다. 다만 2차 추경안 등 외부 변수로 인해 애초 목표였던 이달 내 본회의 통과는 장담할 수 없다.

과방위는 20일 안건조정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연달아 열어 구글 갑질 방지법을 다음 절차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계류됐던 이 법안이 통과를 향해 다시 속도가 붙은 건 8개월 만이다.

◇ 1년 전 발의된 법안, 계류 끝 다시 속도

구글 갑질 방지법은 지난해 7월부터 여야 통틀어 7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과방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를 차례로 거치기 위해선 먼저 과방위가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2소위)를 열어 7개 법안을 하나로 통합해 전체회의로 넘겨야 한다. 이 절차가 여야 갈등으로 지난 11월부터 이달까지 8개월째 지연돼 왔다.

과방위는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이 법안 관련 2소위를 열었지만 법안 처리를 하지 못했다. 법안이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취지에 부합하는지, 미국의 특정 기업(구글)을 겨냥해 규제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따른 통상 마찰 우려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 졸속 법안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신중론을 야당인 국민의힘이 펼치면서다. 마침 구글이 인앱결제 강제 도입 시점을 올해 1월에서 10월로 늦추면서 이원욱 과방위원장(민주당 의원)도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숙의 과정을 거치려고 한다”라며 야당과 더 대화하기로 결정했다.

20일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조승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안건조정위는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도입을 막는 이른바 '구글 갑질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연합뉴스

2소위는 지난 2월 다시 열렸지만 같은 이유로 결론이 보류됐다. 이후 여야 모두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등이 겹쳐 세 번째 2소위 개최도 미뤄졌다. 여당은 오는 10월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도입을 막으려면 3개월의 시행령 마련 기간을 제외하고 늦어도 이달까진 법안 통과를 마쳐야 한다는 판단으로, 지난달 17일 서둘러 세 번째 2소위를 열기로 했다.

이번엔 ‘TBS 감사청구권’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 야당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정치적 편향성과 진행자 김어준씨의 고액 출연료 논란을 두고 감사원이 TBS를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 감사 청구 여부를 지난달 과방위 회의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했지만 여당은 “감사 청구 여부는 국회가 아니라 서울시가 할 일”이라며 거절했다. 이에 야당은 예정됐던 2소위를 포함한 지난달 과방위 회의 일정을 모두 보이콧했다. 특히 2소위는 야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야당이 보이콧하면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지난달 24일 이원욱 과방위원장은 2소위를 우회해 다음 절차로 넘어갈 수 있는 안건조정위원회 개최를 결정했다. 이날 오전 10시 세 번째로 열린 안건조정위에선 위원 6명 중 불참한 야당 의원 2명을 제외하고 여당 의원 3명과 무소속 양정숙 의원 등 4명이 통합 법안에 합의하고 전체회의 상정에 찬성했다. 오후 2시에 열린 전체회의에서도 여당 단독으로 법사위 상정을 결정했다.

◇ 속도 붙었지만 한 달 더 걸릴 수도…2차 추경안 등 변수

남은 절차인 법사위와 본회의 역시 여당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하지만, 여당이 애초 목표한 대로 이달 내 본회의 통과가 가능할지는 확실치 않다. 법사위와 본회의 모두 일정에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선 법사위가 언제 열릴지가 관건이다. 국회법 제59조는 상임위(과방위)에서 통과한 법안은 5일간 숙려기간을 거친 후 법사위에 상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따르자면 이날 과방위를 통과한 법안은 오는 25일은 돼야 법사위에서 논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반면 법사위 다음 단계인 본회의는 재난지원금 등 2차 추경안 논의 일정에 맞춰 오는 23일로 정해진 상황이다. 23일 본회의에 구글 갑질 방지법을 안건으로 올리지 못하면 본회의 통과는 다음 달로 미뤄진다. 과방위 여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 후 국회 기자간담회 백브리핑에서 “법사위가 오는 22일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는데 숙려기간 (5일) 고려하면 (구글 갑질 방지법이) 법사위에 올라가긴 어려울 듯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국회법의 해당 조항은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 예외를 인정하기 때문에 오는 22일 예정된 법사위를 열고 23일 본회의 일정을 맞출 수도 있다. 법사위 야당 간사를 맡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아직 (구글 갑질 방지법이) 법사위 안건으로 올라오진 않았지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숙려기간 5일 안 채우고 밀어붙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당도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내부적으로 결정하지 않았고, 구글 갑질 방지법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야당의 반발도 마냥 무시할 수 없어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승래 의원은 “숙려기간 5일을 채울지 말지는 당 지도부와 상의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2차 추경안 논의 상황 역시 변수로 작용한다.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을 두고 당정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본회의 일정이 23일 이후로 연장되거나 연기될 수도 있는데, 2차 추경안과 함께 처리하기로 한 구글 갑질 방지법도 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승래 의원은 “본회의 일정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만약 본회의가 미뤄져서 법사위 개최를 위한 숙려기간 5일을 채우기 충분하면 (구글 갑질 방지법도) 이달 내 처리를 끝내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달 처리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여당은 이런 변수를 고려해 “법안을 이달 내 통과시키겠다”라는 기존 입장을 “늦어도 다음 달까진 통과시키겠다”로 바꿨다. 다음 달까지만 처리돼도 구글을 사전 규제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음 달 열릴 국회는 오는 10월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도입 전 법안을 처리해 법제화를 마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평가된다. 오는 9월에도 국회가 열리지만 국정감사와 예산안 처리 위주로 논의될 것이고 시행령 마련을 위한 시간도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 원스토어 반사이익 논란 ‘동등접근권’은 제외

‘원스토어 반사이익’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콘텐츠 동등접근권’ 규정은 이날 상정한 법안에서 빠졌다. 콘텐츠 동등접근권 규정은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가 구글 플레이스토어·애플 앱스토어뿐 아니라 국내 모든 앱마켓에 동등하게 앱을 유통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이 SK텔레콤·네이버가 대주주로 있는 토종 앱마켓인 원스토어의 점유율을 높이는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업계에서 제기됐다. 이미 대부분의 앱들이 입점한 플레이스토어·앱스토어를 제외하면 원스토어가 사실상 남은 유일한 국내 앱마켓이기 때문이다.

원스토어 로고와 앱마켓 화면. /원스토어 제공

한준호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규정에 대해, 지난 15일 안건조정위 회의에서 같은 당 정필모 의원은 “특정 업체(원스토어)가 내년 초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라며 “법이 통과되면 특혜를 볼 소지가 분명히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고민스럽다”라고 말했다. 국내 인터넷 업계를 대표해 구글 갑질 방지법 통과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와 한국웹툰산업협회·한국웹소설산업협회 등 창작자 단체도 동등접근권 도입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안건조정위 위원들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날 상정한 법안엔 이 규정을 포함하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동등접근권 규정은) 개발사의 추가적인 부담을 최소화된다는 전제하에서 수용이 가능하다”라며 “업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부분들을 좀 더 신중히 추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냈다.

정필모 의원도 “앱마켓 사업자가 앱 개발사에 부당하게 다른 데 입점하지 말라고 강요할 때 동등접근권이 좋은 조항이 되겠지만, 개발사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이 될 수 있는 양면성이 있다”라며 “이 부분을 빼고 인앱결제 강제 금지에 대한 것만 의결하는 게 어떤가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에 조승래 의원은 “그럼 동등접근권 문제는 나중에 같이 판단하기로 하자”라고 답했다.

과방위와 과기부·방송통신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부처들은 기존 법과의 중복 규제 우려를 두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지만 ‘앱마켓이 앱 개발사에게 특정 결제 방식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기본 내용엔 합의했다. 현 법안대로라면, 구글이 앱 개발사에 결제액의 15~30% 수수료를 부과하는 인앱결제 강제 정책을 당국이 사전에 규제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