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벤 구리온은 시오니즘(유대민족주의)의 열정적인 지지자였으며,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이기도 하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가 마무리된 뒤 이스라엘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쳐 지금도 '이스라엘의 선구자'로 불린다. 이스라엘의 관문인 텔 아비브 공항의 이름이 벤 구리온이라는 점은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 사람에게 존경 받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벤 구리온은 1970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네게브 사막의 키부츠로 돌아가 '사막의 꽃'을 피우겠다는 자신의 비전을 실천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벤 구리온은 작은 키에 끈질긴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벤 구리온은 생전에 "네게브에서 이스라엘의 창조성과 개척적인 활력을 시험해야 한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벤 구리온 역시 지금의 네게브가 최첨단 사이버 보안 개발과 인공지능(AI), 국방 혁신의 허브로 떠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네게브의 수도로 불리는 베르셰바는 오랫동안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먼지투성이 집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으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다국적 기업과 자금, 이스라엘 방위군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베르셰바의 첫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 루빅 다닐로비치 시장은 지난 2008년 "내 비전은 베르셰바가 전 세계의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인큐베이터가 되고 미래를 창조하는 신생 기업과 국제적인 돛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6년 뒤인 2104년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허허벌판에 지나지 않았던 베르셰바를 "이스라엘을 넘어 전 세계 사이버 보안 센터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텔아비브에서 100여㎞ 남쪽으로 약 1시간 30분을 달려가면 오라클, IBM, 도이치텔레콤 등 글로벌 기업의 연구 센터가 들어서 있는 '가브얌 네게브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 파크'가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의 분쟁이 가끔 발생하는 이곳은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작은 도시 베르셰바다. 베르셰바는 2014년부터 이스라엘이 전 세계 사이버 보안의 허브를 꿈꾸며 조성한 곳이다. 현재 20만㎡ 부지에 들어선 4개의 건물에 다양한 기업이 입주해 사이버 보안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규모를 늘려가겠다는 게 이스라엘 정부의 방침이다.
가브얌 네게브 파크는 이스라엘 보안의 에코시스템(생태계)을 형성하고 있는 평가를 받는다. 벤 구리온 대학과 정부, 군대, 민간기업이 이런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가브얌 네게브 파크에는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벤 구리온 대학, 사이버위협대응팀(CERT), 예루살렘벤터캐피털(JVP) 등이 있어 이곳에 입주한 기업은 필요한 기술과 인재, 정보, 자금을 한 번에 충족할 수 있다.
사이버 보안에 특화된 벤 구리온 대학은 인재 양성에도 애쓰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에 입주한 기업들은 즉각 인재를 보충할 수 있다. 기업의 전문가들은 벤 구리온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업계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인재들은 '즉시 전력감'으로 키워진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 역시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기업들의 강점 중 하나로 '강력한 군사 배경을 지닌 기업가'들을 꼽기도 했다. 댄 블룸버그 베르셰바 지역개발 담당 부사장 겸 벤 구리온 대학 교수는 "IDF가 베르셰바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라며 "벤 구리온 대학은 국가 과제를 해결하는 씽크탱크로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입주 기업들은 예루살렘벤처파트너스(JVP)의 지원을 받아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에 바로 뛰어들 수 있다. JVP는 초기 투자는 물론이고, 글로벌 기업과의 연계도 맡는다. 대표적인 기업 '사이엑티브'라는 회사가 지난 2015년 글로벌 핀테크 기업인 페이팔에 6000만달러(약 690억원)에 인수되기도 했다.
사물인터넷(IoT)과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안보가 물리적 환경에서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자동차와 금융, 유통 등 모든 산업에서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적대국에 쌓여있는 이스라엘의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블룸버그 부사장은 "이스라엘 정부는 사이버 파크에 컴퓨터긴급대응팀(CERT) 등을 두고, 각종 사이버 위협 정보를 기업과 공유하고 있다"라며 "이런 이유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사이버 파크에 연구 센터를 두고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곳은 군과 정부, 기업과 학교가 서로 필요한 것을 채우는 장소다"라며 "모든 것이 함께 이뤄지고, 협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