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백악관에서 반도체 칩을 들어보이며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대만 TSMC의 중국 공장 증설 계획에 제동을 거는 것을 넘어 중국에 대한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수출을 막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이 고조될 경우 중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체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대만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최근 중국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한 전방위적인 압박을 시작했다. TSMC가 중국 난징에 증설하려는 12인치(300㎜) 웨이퍼(반도체 원판) 파운드리 공장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를 도울 것을 우려해 미국 정부는 TSMC를 직접 압박하고 나선 상태다.

미국은 TSMC에 “중국 내 공장 증설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도울 것으로 우려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TSMC는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중국 난징에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공정 라인을 추가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미국이 구형 반도체 생산라인이라도 중국 내에 반도체 생산라인이 늘어나는 것을 경계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전 세계 1위 EUV 장비업체 ASML이 중국에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ASML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견제가 시작됐다”며 “ASML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중국을 제재할 수 있는) 핵심 지렛대로 부상했다”라고 전했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 있는 신관기술의 반도체 공장. /연합뉴스

ASML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은 중국 업체가 ASML의 장비를 확보할 경우 중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ASML의 EUV 장비는 10㎚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필수 장비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지난 4월 ASML에 중국 수출을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규제 시도는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라며 미국의 압박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미국은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하는 방법으로 ASML의 장비 수출을 차단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가 안보 등의 이유로 ASML의 장비 수출을 허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현재까지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 6월 만료된 ASML의 EUV 장비 대중 수출 허가를 갱신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정부도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계를 높여가고 있다. 영국은 자국 최대 반도체 업체 뉴포트 웨이퍼 팹(NWF)이 중국 자본에 인수되는 것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영국의 핵심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전경. /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중국 반도체 사업의 성장을 막기 위해 비논리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라며 “영국의 안보 위협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라고 했다.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주요국들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시작되면서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안, 우시에 생산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는데,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 제품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출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승인을 볼모로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최근까지 글로벌 반도체 기업간 인수합병(M&A)를 승인하지 않고 있는데, 인텔 낸드 사업부 승인을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사용할 경우 SK하이닉스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중국 대표 반도체 업체 칭화유니가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반도체 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중국 내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라며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앞으로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