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D램 기술 마케팅 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4세대(1a) D램 양산을 놓고 업체 간 '세계 최초' 타이틀 경쟁이 시작되면서 기술력을 내세우는 기술 마케팅이 재점화된 것이다.
13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D램 기술 마케팅 경쟁은 올해 초 미국 마이크론이 4세대 1a D램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이 업계 선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1a D램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현재 D램 시장에서는 회로 선폭(트렌지스터 게이트의 폭)을 좁히기 위한 기술 경쟁이 뜨겁다. 회로 선폭은 반도체 업체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선폭이 좁을수록 웨이퍼(반도체 원판) 한 장에서 나오는 D램의 생산량이 늘어난다. 4세대인 1a D램은 3세대와 비교해 25% 높은 생산량을 보인다.
또 제품 자체의 성능이 개선되는 효과도 나타난다. 이전 제품과 비교해 속도와 안정성이 강화되는 동시에 소비 전력은 줄어든다.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최신 정보통신(IT) 기기와 클라우드 서버 장비에 최첨단 D램 신제품이 앞서 탑재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만 최근 5~6년간 구체적인 선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처럼 여겨져왔다. 업체 간 기술 경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공정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만큼 기술 마케팅으로 업체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선폭 1㎚를 좁히기 위해서는 1~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업체 간 경쟁이 고조되면서 투자 금액이 늘어날 경우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 업체들은 10㎚급 D램 양산을 시작한 2015년부터 회로 선폭을 숫자와 알파벳으로 부르는 방식으로 기술 마케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10㎚ 후반은 1x(1세대), 2세대와 3세대에는 각각 1y, 1z로 부르는 식이다. 4세대부터는 1a, 1b(5세대), 1c(6세대) 등을 붙이기로 했다.
그런데 마이크론이 지난 1월 4세대 1a D램 양산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런 불문율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이크론의 기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삼성전자가 구체적인 선폭을 공개하면서 기술 마케팅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진행된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회사가 양산하는) 1z D램은 15㎚ D램을 말한다"라고 했다. 2015년 이후 6년 만에 D램의 구체적인 선폭을 공개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양산할 1a D램의 선폭이 14㎚라고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이달부터 극자외선(EUV) 노광공정을 활용한 1a D램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하면서,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D램의 기술력을 알리는 기술 마케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는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경쟁사에 뒤처진 모습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1a D램 양산 일정을 앞당겨 올해 3분기 내에 시작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D램 공정에서는 EUV 장비 적용 여부가 기술력의 척도로 평가받고 있는데, SK하이닉스가 한발 앞서 EUV를 적용한 1a D램 양산을 시작한 만큼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이미 3세대 1z D램 양산에 EUV 장비를 적용하고 있어 EUV를 적용한 1a D램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라며 "자존심을 구긴 삼성전자가 또 한 번의 반도체 초격차를 펼칠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