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충남 아산시 호서대 레이저쎌 연구소&팹(공장). 흰색 가운을 입고, 모자를 쓴 뒤 신발을 갈아신고 에어터널을 지났다. 강력한 바람이 수초간 몸에 붙은 먼지나 이물질 등을 털어내고서야 팹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팹 안에는 정밀 기계가 가득했다. 최재준 레이저쎌 대표는 “모두 세계 1등 기업에 납품될 장비들이다”라고 했다.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하이퍼스케일컴퓨팅(HPC), 클라우드 등의 미래기술의 등장은 우리의 생활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반도체. 대용량의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반도체의 성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방법은 크게 대면적과 적층으로 나뉜다.

최재준 레이저쎌 대표가 충남 아산시 호서대학교에 있는 레이저쎌 팹의 LSR 앞에 서 있다. /레이저쎌 제공

대면적은 큰 원판(웨이퍼)을 사용해 반도체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회로 선폭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 넣어야 하는데, 이를 초미세공정이라고 부른다. 반도체 초미세공정 경쟁은 현재 반도체업계의 가장 큰 화두 중에 하나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가 세계 최초로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개발한 데 이어, 삼성전자(파운드리) 역시 10㎚ 이하 미세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초미세공정은 한정된 웨이퍼 공간 속에 되도록 많은 반도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만 고안된 것은 아니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칩 성능이 높아지고, 소비전력은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대면적 웨이퍼와 초미세공정이 만나면 고성능 칩을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AMD, 엔비디아, 삼성전자(시스템 LSI), 퀄컴, 인텔, 애플 등이 초미세공정으로 반도체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2차원(2D) 형태 기술인 초미세공정은 회로 선폭을 좁힐수록 물리적인 한계가 발생한다. 0㎚ 반도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하게 된 기술이 바로 적층. 반도체를 2차원으로 무작정 늘릴 수 없다면 쌓아 올려 반도체의 단위면적당 성능을 극대화하자는 게 이 기술의 핵심이다.

반도체를 쌓아 올릴 때 어떻게 붙이느냐는 기술적 과제다. 반도체 후공정 중 접합은 각 칩과 소자, 기판 등을 아주 근접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각 부위를 잇는 접착제에 열을 가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접합은 장비를 통해 완제품 전체를 가열하기 때문에 기판과 칩 패키지 전부에 같은 온도의 열이 전달, 휨 현상이 나타나는 단점이 있었다. 제품의 최종 완성도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질마다 휘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기초적인 물리적 상식이 간과된 탓이다.

최근에는 접합부위에만 열을 가하는 열압착접합장비(TCB)가 도입되기도 했다. 열을 가하되 휘지 않도록 누르는 방식이다. 그러나 TCB는 장비가 대당 10억~20억원 수준으로 비싼데, 시간당 생산성은 기존 방식의 25% 수준으로 매우 낮았다. 또 일본 도레이, 파나소닉, 시바우라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레이저쎌이 만드는 LSR 시스템의 다양한 장비 종류들. BSOM과 NSOL, 공정 등 통합 솔루션 형태로 고객사에 납품된다. /레이저쎌 제공

이런 흐름을 단번에 바꿔버린 것이 레이저쎌 독자 기술인 ‘선택적 레이저 접합(LSR)’이다. 간단하게 붙여야 할 부위만 레이저로 열을 가한다는 점에서 언뜻 TCB 접합과 비슷해 보이지만, LSR은 면 단위 레이저 빔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다. 열압착접합이 특정 부위 한 곳을 작업하는 데 15초가 걸리고, 열 군데를 다 붙이려면 150초가 필요한 반면에 면 레이저 접합은 10군데를 동시 가열, 작업시간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동시에 하단 기판에 열이 닿지 않아 휨 현상도 거의 없다.

최 대표는 “LSR은 TCB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소모 전력이 적고, 작업 속도는 수 배 이상 빠르다”라며 “반도체뿐 아니라 적용 분야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다양한 업종에서 이 기술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초정밀 광학계인 ‘BSOM(Beam Shaping Optical Module)’ 시스템이다. 시스템에 포함된 여러 개의 렌즈가 스팟 레이저 빔을 면 형태로 바꾼다. 현재까지 개발이 완료된 면 레이저의 최대 면적은 200×200㎜로, 8인치(200㎜) 웨이퍼 전체를 커버할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작은 면적이나 원, 사각형 등 다양한 형태 변형도 가능하다. 다섯가지 특수 광학계가 25종의 모듈 스펙을 지원한다.

열을 발산하는 고출력 레이저를 쓰는 탓에 냉각 시스템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레이저쎌은 ‘NBOL(iNnovation Bonding Optical Lasr)’를 만들었다. 수 ㎾급의 하이파워 레이저를 냉각 시스템과 접목한 특수 레이저 시스템이다.

LSR, BSOM, NBOL 모두 세계 최초의 기술들로, 레이저쎌이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에는 이 장비를 활용한 공정조차 구성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레이저쎌은 면레이저 시스템의 광학적인 안정성과 열적 안정성, 레이저 특성을 분석해, 공정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정 프로세스까지 고객사에 납품하고 있다.

최 대표는 “여러모로 우리 기술은 그간의 반도체 산업을 바꿔버릴 수 있는 게임체인저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라며 “장비를 어떻게 도입하고,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 없이 통합 솔루션 형태로 납품되기 때문에 효율성이 극대화된다”고 했다.

여러 겹의 광학계로 고출력 레이저를 면 형태로 변화시키는 BSOM 시스템. /레이저쎌 제공

세계 최초의 기술이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인가에는 의문이 따를 수 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레이저쎌은 설립 2년 차인 지난 2016년 미국 AREA 컨소시엄에서 1년 반 동안 해당 기술의 경쟁력과 신뢰성을 검증받았다. 세계 1등 회사들이 레이저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 이날 팹에도 세계 1위 회사에 납품이 결정된 장비들이 최종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레이저쎌이 개발한 면레이저 접합 시스템은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활용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디스플레이 분야다.

올해 디스플레이 시장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미니발광다이오드(LED)는 100~20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니LED 소자를 액정표시장치(LCD) 백라이트에 촘촘히 박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니LED TV 1대에 탑재되는 미니LED 숫자는 65인치 4K를 기준으로 약 1만~1만5000개로 추산된다. 올해 미니LED TV 출하량은 약 500만대로 예상되는데, 올해 최대 750억개의 미니LED가 탑재된다는 뜻이다.

이미 삼성전자가 네오 QLED라는 미니LED TV 제품군으로 시장 포문을 열었고, LG전자도 미니LED TV QNED를 내놓기로 했다. 미니LED는 TV 외 다른 디스플레이 장치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애플은 태블릿 PC 아이패드 프로 신제품에 미니LED를 채택했고, 곧 노트북이나 모니터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미니LED가 다양한 응용처에 들어가게 되면서 불량으로 인한 공정 비용 절감은 곧 경쟁력이 됐다. 750억개의 미니LED 중 불량 소자가 0.1%만 발생해도 7500만개의 불량이 나온다는 계산으로, 이미 패널에 실장된 미니LED를 하나하나 교체하기에는 낮은 생산성과 높은 공정 비용이 우려되는 것이다. 결국 불량 LED만 떼어내 정상 LED를 붙이는 리웍(Re-WorK) 공정이 대단히 중요해졌고, 여기에서도 주변 부품이나 기판은 손상하지 않고 다시 LED를 붙일 수 있는 면레이저 접합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 유일의 면레이저 접합 시스템을 보유한 레이저쎌의 경쟁력은 이렇게 드러나고 있다.

최 대표는 “면레이저는 우리가 세계 최초이자 세계 최고다라는 점을 고객사도 인정해 주고 있는 것 같다”라며 “기술력만큼은 고객들과 신뢰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레이저쎌은 이런 선진 기술을 바탕으로 내년 기술특례 상장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