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게임사 웹젠을 상대로 지식재산권(IP) 침해 소송을 냈다. 웹젠의 모바일 게임 R2M이 대표 게임이자 회사의 주요 매출원인 리니지M을 심각하게 베꼈다는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핵심 IP를 보호할 차원이 있어 (저작권 소송)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외 게임사와 국내 게임사 간 저작권 분쟁은 있었지만, 매출 규모가 수천억원 이상인 국내 대형 게임사 사이에서 이 같은 소송은 전례가 없었다. 그만큼 이번 소송은 업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해외-국내 분쟁 중 대표적인 사례는 ‘배틀그라운드’를 제작한 크래프톤이 같은 배틀로얄 장르 게임 ‘포트나이트’를 내놓은 미국 게임사 에픽게임즈를 상대로 IP 소송을 건 일이다. 또 위메이드 역시 중국 게임사 등을 상대로 미르의 전설 IP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리니지 IP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 리니지M. /엔씨소프트 제공

업계는 이번 소송으로 그간 방치에 가까웠던 국내 게임사 간 표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게임 업계가 그만큼 ‘표절’에 둔감하기도 했고, 표절이 드러날 경우 IP 로열티를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원조’를 내세우는 게임회사가 아류작들에 로열티를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것은 신호탄이 될 수 있다”라며 “수익을 내기 위해 무분별하게 다른 회사의 게임을 가져다 쓴 업체들에 막강한 IP를 보유한 엔씨소프트가 일종의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웹젠은 지난 2000년 설립된 개발사로, 뮤(MU), R2 등의 게임을 보유하고 있다. 김병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분 26.72%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다.

◇ 리니지M과 R2M 사이에 무슨 일이?

지난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M은 출시 이후 지금까지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순위에서 3위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을 정도로 엔씨소프트의 대표이다. PC 게임 ‘리니지’를 모바일로 재해석한 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로, 출시 첫날 국내 역대 모바일 게임 최고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출시 2일 만에 양대 마켓(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8287억원으로, 회사 전체 매출의 38%쯤을 책임지고 있다.

R2M은 웹젠이 PC 게임 R2를 모바일로 이식한 게임이다. R2는 김대일 펄어비스 현 의장이 개발한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모바일 버전인 R2M은 지난해 8일 출시됐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R2M의 선전으로 웹젠 내에서 R2 IP 관련 매출은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 2940억원의 20%에 달했다.

웹젠의 모바일 MMORPG 'R2M' 실행 화면. /웹젠 제공

하지만 R2M은 원작인 R2보다 리니지M과 더 유사하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용자 경험(UX) 면이다. 캐릭터 선택 화면이나 메뉴, 인벤토리(가방) 등의 구성이 실제로 흡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국내외 많은 MMORPG가 장르 특성상 시스템 유사성을 보이는 경우가 다수 있어 이를 두고 ‘표절’이라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다만 엔씨소프트는 시스템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표절 여부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가령 리니지M에는 가방 내 물품 숫자와 종류에 따라 캐릭터의 행동 등에 영향을 받는 시스템이 적용돼 있는데, R2M도 비슷한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게다가 무게가 캐릭터 행동에 작용하는 알고리즘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리니지M에서 캐릭터의 경험치나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여주는 ‘아인하사드의 가호’라는 축복형 아이템이 있다. R2M에서는 같은 역할을 하는 ‘유피테리의 계약’이 있다. 이 역시도 장르에 따른 유사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엔씨소프트는 해당 아이템의 발동 시간이나 방식 등의 알고리즘이 리니지M과 똑같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 결국 돈? 표절 인정 받을 경우 로열티 수익 기대

엔씨소프트는 웹젠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면서 “IP는 장기간 연구개발(R&D)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기업의 핵심 자산이다”라며 ”게임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IP 보호와 관련된 환경은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엔씨소프트는 “소송과 별개로 웹젠 측과는 원만한 합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게임업계는 엔씨소프트의 이번 소송 취지가 전자보다는 후자에 방점이 찍혀있을 것으로 본다. IP 로열티(사용료) 지급 등을 노린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송과 관계없이 합의해 나가겠다는 건 결국 사용료를 받겠다는 뜻 아니겠냐”라며 “여기에 재판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 받을 경우에는 법적 근거까지 확보하게 된다”고 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국내외에서 거둔 로열티 수입이 2180억원에 달했다. 이는 회사 전체 매출 2조4161억원의 약 9%에 해당하는 수치다. IP를 빌려주는 것만으로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IP를 제공해 얻는 수익은 별도의 연구개발비나 인건비 등이 들지 않아 업계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한다.

웹젠 R2M 시네마틱 영상. /웹젠 유튜브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크래프톤은 지난해 1조6704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1조4176억원이 아시아 시장 매출이다. 아시아 시장은 크게 중국과 인도로 나뉘는데, 현재 유통허가권(판호) 발급이 막혀 중국에서 게임 서비스를 할 수 없는 크래프톤이 어떻게 이 지역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렸는지에 대한 업계 의구심이 있었다. 이에 대해 최근 크래프톤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텐센트가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화평정영에 대해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배분 구조에 따라 수수료(로열티)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 아이템 등장·효과 확률, 영업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엔씨소프트의 이번 소송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저작권 침해뿐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관련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부정경쟁방지법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을 줄인 것으로, 엔씨소프트의 의도는 게임 시스템상 영업비밀로 볼 수 있는 여러 내용을 이번 소송에서 짚고 넘어가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간 엔씨소프트 등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라며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표해왔다. 영업비밀의 현행법상 정의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회사의 주요 수익모델(BM) 중 하나다. 따라서 아이템과 게임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 효과 등은 게임회사의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의 정보가 된다. 이 경우 확률형 아이템의 등장이나 강화 확률 등을 영업비밀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또 게임 아이템 등과 같은 콘텐츠에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되면, 역시 저작권법으로도 다뤄질 여지가 크다.

웹젠 R2M(위)과 엔씨소프트 리니지M의 실제 게임 화면. /각 게임 캡처

엔씨소프트와 웹젠 모두 소장에 제기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사항이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앞으로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는 엔씨소프트가 리니지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웹젠이 모방했다고 밝힌 것에서 말미암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내용이 게임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 및 과금 시스템, 또는 아이템의 합성 방식, 나아가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구성하는 알고리즘 등을 따라 한 것 아니겠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아이템의 등장이나 효과 확률을 포함한 시스템 전반의 모방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엔씨소프트가 만일 확률이 개입되는 특정 콘텐츠에 대한 표절 여부를 들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문제 삼았을 경우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를 공개하겠다는 협회 방침과는 별개로, 이 부분에 대한 영업비밀이 성립하는 지에 대한 법적인 판단이 있게 될 것”이라며 “(해당 소송은) 저작권 침해와 확률형 아이템 등 게임 내 콘텐츠에 대한 영업비밀 여부 판단을 묻게 될 중요한 소송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엔씨소프트는 한국게임산업협회가 발표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이하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을 오는 3분기부터 모든 게임에 순차적으로 적용,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이 시행되는 올해 12월 이전에 반영을 완료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캡슐형, 강화형, 합성형 등 모든 유료 콘텐츠의 확률을 공개하는 한편, 유료 아이템뿐 아니라 유료와 무료 요소가 결합된 콘텐츠의 확률도 알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