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전자가 지난 3월 출시한 전기밥솥 트윈프레셔 마스터셰프. /쿠쿠전자 제공

쿠쿠, 쿠첸, 풍년 등 밥솥 전문 제조사들이 에어컨, 펫가전 등 틈새가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쌀 소비가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밥솥에만 집중해서는 수익을 올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전기밥솥 1위 쿠쿠전자 가전사업부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인 561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1% 늘어난 수치다. 쿠쿠의 매출은 2015년 5153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8년 4639억원까지 매년 하락했다. 밥솥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5045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반등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트업(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는) 효과 등으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쿠쿠의 실적 반등에는 틈새가전이 있다. 쿠쿠는 2018년 밥솥을 대신할 새로운 먹거리로 '인스퓨어' 브랜드를 출시했다. 청정 생활가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밥솥, 전기레인지 등 주방가전에서 벗어나 공기청정기, 무선청소기 등 생활가전 전체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또 2019년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펫가전 '넬로'를 선보였고, 지난달에는 창문형 에어컨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밥솥 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 매년 큰 폭으로 성장했다. 밥솥 전체를 가열하는 유도가열(IH) 압력 기술이 인기를 끌면서 일본 업체들이 주도하던 밥솥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왔다. 국산 밥솥은 일본·중국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 가전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쿠첸의 전기레인지 모습. /쿠첸 제공

하지만 거의 모든 가구에 밥솥이 갖춰진 상황에서 쌀 소비량까지 매년 줄어들면서, 밥솥 시장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1년 71.2㎏에서 지난해 57.7㎏으로 19% 줄었다. 2000년 93.6㎏과 비교해서는 20년 만에 40%가 감소한 것이다.

밥솥 업체들이 밥솥이 아닌 다른 가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밥솥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사업 확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밥솥 회사가 이런 확장 전략에 성공한 건 아니다. 쿠쿠의 경쟁사인 쿠첸의 지난해 매출은 1853억원으로 2018년 2372억원에서 2019년 2091억원을 거쳐 매년 하락하고 있다. 젖병살균 소독기, 분유포트 등 밥솥 이외의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주방가전으로 카테고리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풍년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풍년의 지난해 매출은 577억원으로 2019년 545억원과 비교해 6% 성장했지만 밥솥 매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업계에서는 밥솥 업체들의 생활가전 사업 진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시장에 안착하지 못할 경우 더 빠른 속도로 도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밥솥 업체가 눈을 돌리고 있는 생활가전 시장의 경우 SK매직, 코웨이 같은 중견업체부터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전통의 강자들이 경쟁하는 곳이다"라며 "비슷한 제품과 전략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