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두께의 샤프심과 비교해서도 더 작은 크기의 적층 세라믹 콘덴서(MLCC) 모습. /무라타 제공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소형·고용량 적층 세라믹 커패시터(MLCC)를 내수화하려는 중국 업체들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MLCC 수요가 크게 늘면서 중국 업체들이 MLCC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의 공급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중국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중국 MLCC 업체들은 올해 2분기부터 MLCC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생산라인 증축을 시작했다. 중국 최대 MLCC 업체인 풍화고과(风华高科)는 이달 초 50억위안(약 8400억원) 규모의 비공개 자금조달을 시작했는데, 이 가운데 40억위안(약 7000억원)을 고급형 MLCC 생산라인 증설에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삼환그룹(三环集团)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지난해 12월 MLCC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100여명의 신규 생산 인력을 늘렸다. 또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오포가 최대주주로 있는 우양과기(宇阳科技)는 지난 4월 광동성에 MLCC 공장 증축을 시작했다. 우양과기는 20억위안(약 3500억원)을 투자해 연간 4000억개의 MLCC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MLCC는 전자회로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전류 흐름을 조절, 부품 간 전자파 간섭을 막아준다. 전자제품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데, 전기자동차 시장이 개화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 MLCC 시장 규모는 지난해 16조원에서 올해 18조원을 거쳐 2024년 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내 MLCC 공장에서 한 직원이 생산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기 제공

중국 업체들이 MLCC 내수화에 집중하는 이유는 MLCC의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자급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중국전자소자업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국 MLCC 수요량은 연간 2조8000억개로, 전 세계 생산량(약 4조개)의 71%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MLCC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중국 업체들의 생산량은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반도체산업관찰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중국 풍화고과의 MLCC 월평균 생산량은 130억개로, 월평균 1500억개를 생산하는 글로벌 점유율 1위 일본 무라타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전 세계 MLCC 시장은 일본과 한국, 대만이 전체 생산량의 95%를 점유하고 있다.

최성진 중국 항저우무역관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2023년까지 중국 내수 MLCC 수요량은 3조4000억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국 시장은 전 세계 MLCC 제조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라고 했다.

중국 업체들은 올해 말까지 연간 8000억개의 MLCC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수요량의 20%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중국의 MLCC 생산량이 올해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중국 업체들이 일본 MLCC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은 상태다”라고 했다.

일본 무라타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기록 중인 삼성전기는 올해 하반기 중국 톈진 신공장을 가동한다. 삼성전기는 성장하는 자동차용 MLC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중국에 생산 시설을 만들고 있는데, 중국 업체들의 MLCC 내수화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삼성전기의 MLCC 확대 전략이 악재를 만났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고용량 프리미엄 MLCC에서는 여전히 기술력 차이가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내수화 움직임으로 삼성전기를 포함한 글로벌 업체들의 중국내 점유율이 소폭 감소할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