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애플, 퀄컴, 삼성전자 등이 최근 사업 영역을 노트북 프로세서로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노트북이라는 정보기술(IT) 기기가 기본적으로 '이동'과 '휴대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모바일 AP로 쌓은 '고성능·고효율' 노하우가 노트북 분야에서도 충분히 통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2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노트북 판매량은 2011년 이후 사상 최대인 1억7300만대(전년 대비 9% 증가)를 기록했다. 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맞물린 것으로, 원격업무·교육 등에 활용되는 노트북 판매량도 크게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올해 역시 노트북 판매량은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1억7500만대, 내년 1억7700만대의 노트북이 전 세계에서 팔려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그간 모바일 AP에서 강점을 보여온 기업들에 새 기회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모바일 기기인 스마트폰·태블릿 노트북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모바일 AP 제조사의 노트북 분야 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애플이 선보인 M1칩은 회사의 자체개발 통합칩셋(SoC) 브랜드 '애플 실리콘'의 첫 맥(Mac)용 제품으로, 점차 커져가는 노트북 시장을 노린 전략 프로세서라고 할 수 있다. SoC는 완전 구동이 가능한 제품과 시스템이 한 개의 칩에 들어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의 칩에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램(RAM), 롬(ROM) 등의 다양한 역할을 구현한다. SoC는 모바일 기기에서 전력 소비가 적은 기기를 중심으로 채택돼 왔다. 앞서 애플이 선보인 스마트폰 AP인 'A시리즈'가 대표적이다.
M1칩은 영국 반도체 기업 ARM의 아키텍처(명령어체계)에 기반한다. 다만 ARM 아키텍처는 전력 소모량이 낮다는 강점 외에 PC나 노트북용으로는 성능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애플은 ARM 기반 칩의 단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노트북인 맥북, 태블릿인 아이패드에 적용했다. TSMC의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만들어 진다. 시장에서는 "인텔 프로세서를 넣었던 과거 제품들보다 성능이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모바일 AP 점유율 2위인 퀄컴 역시 노트북용 프로세서를 내놓고 있다. 지난 2018년 공개된 스냅드래곤 8cx가 주인공이다. 노트북용 프로세서지만, 퀄컴 모바일 AP 브랜드명인 '스냅드래곤'을 쓰고 있어 뿌리가 같은 것으로 본다. 역시 ARM 아키텍처에 기반하고 있다.
2020년 출시된 2세대의 경우 삼성전자 갤럭시북 S, 레노버 플렉스 5G 등에 들어갔다. 1세대에서는 4세대 이동통신(LTE)을 지원하는 칩셋을 넣었으나, 2세대부터는 5세대 이동통신(5G)를 지원하게 됐다. TSMC의 7㎚ 공정에서 생산된다.
M1, 스냅드래곤 8cx와 같은 칩셋은 최근 노트북의 '고효율' 흐름에도 부합한다. 인텔 노트북 프로세서는 CPU, GPU, 램 등을 각각 갖춰야 해 전력 소모량이 많고, 노트북의 크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반해 하나의 칩이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SoC는 효율적인데다, 노트북 두께도 얇게 만들 수 있다. 또 기본적으로 같은 칩 구성을 갖고 있어 같은 계열의 칩셋을 사용하는 경우 '스마트폰-노트북-태블릿'으로 이어지는 기기 간 생태계 구현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역시 모바일 AP의 노트북 칩셋화를 꿈꾼다. 하반기 내놓겠다고 밝힌 '엑시노스 2200'이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ARM 아키텍처를 채택한 전작 엑시노스 2100의 경우 SoC에 포함된 GPU도 ARM '말리'를 쓰고 있는데, 해당 GPU는 그래픽 성능이 다소 부족해 고성능 게임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스마트폰보다 더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일반 노트북 게임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 있어 삼성전자는 현재 AMD와 엑시노스 2200에 적용될 GPU를 개발 중이다. 이 때문에 엑시노스 차기작이 노트북에도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모두 기존 엑시노스 2100과 2200 모두 삼성전자의 5㎚ 공정으로 만들어 진다.
업계 관계자는 "엑시노스 역시 전력 소모가 적은 SoC라는 점에서 최근 추세를 고려했을 때 노트북에 장착될 여지는 크다"라며 "모바일 기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만큼 모바일 AP와 노트북 프로세서의 경계 나누기도 점차 의미가 없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인텔은 최근 초경량 노트북을 겨냥한 11세대 CPU 신제품 2종을 출시하며, 모바일 AP가 침투 중인 노트북 시장 수성에 나섰다. 새 CPU는 업계 최초로 최대 5㎓ 주파수를 제공하는데, 일반 노트북 CPU의 주파수인 2~3㎓의 두 배 수준이다. 통상 주파수가 높으면 프로세서의 정보 처리 능력도 큰 것으로 본다. 인텔 관계자는 "신제품은 경쟁사 대비 최대 25% 우수한 애플리케이션 성능을 제공한다"라며 "특히 고성능 게임에서 최대 2.7배 더 높은 프레임레이트로 1080p 해상도의 게임 플레이를 구현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