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멕시코 공장에서 직원이 TV 조립을 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지난 1분기 가전 분야에서 나란히 사상 최대 매출을 새로 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원재료 가격 상승에 2분기 수익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다 보니 물건을 많이 팔아 매출은 올랐지만, 수익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23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TV와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CE(소비자 가전) 부문은 1분기 매출 12조9900억원, 영업이익 1조1200억원을 기록했다. CE 부문의 선전으로 삼성전자는 1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매출 6조9200억원, 영업이익 3600억원 등 흑자를 이어갔다.

LG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생산하는 H&A(홈어필리언스&에어솔루션) 사업본부의 1분기 매출은 6조7081억원, 영업이익은 9199억원을 기록했다. LG전자의 특정 사업본부의 분기 영업이익이 9000억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TV 사업을 맡고 있는 HE(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는 4조82억원의 매출과 4038억원의 영업이익을 1분기에 거뒀다. 전년 대비 매출이 1조원 이상 늘었다.

호실적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원재료 부담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1분기 사업보고서에 각각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를 담아냈다. 보통 매 분기, 반기, 연간 나오는 사업보고서에 각 회사는 원재료 가격 동향을 표시해 시장 상황과 향후 회사의 수익 등을 전망할 수 있게 하는데, 이번 보고서 내용은 이전보다 상세하게 기록돼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엿보인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많이 팔아도 수익이 적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풍에어컨을 만들고 있는 삼성전자 직원.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CE(소비자 가전) 부문이 매입하는 TV·모니터용 디스플레이 패널의 1분기 가격이 전년 대비 약 51% 상승했고, 이로 인해 전체 원재료 매입액에서 디스플레이 패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에 비해 확대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CE 부문은 지난해 1분기 원재료 구입에 4조8516억원을 썼는데, 당시 디스플레이 패널 매입액은 1조324억원으로 23.7%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 원재료 매입액은 6조6268억원으로 디스플레이 패널이 28.1%(1조8624억원)의 비중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TV용 패널을 주로 중국 CSOT, BOE, 대만 AUO 등으로부터 납품받는다. 삼성전자는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LCD 가격 상승과 반도체 수급 문제가 (TV 사업 수익성에) 일부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또 그간 삼성전자는 CE 부문 원재료 항목에 '스틸(강철)'을 따로 넣지 않고 있었으나, 이번 1분기 보고서에서는 항목을 추가했다. 강철 역시 전 세계적으로 최근 가격이 높아지는 원재료로, 가전제품의 외장 케이스 등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실제 강철의 원료인 철광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철광석 가격은 1t당 211.85달러로, 이는 연초대비 45.56달러(28.17%) 오른 수치다. 또 전달과 비교해서는 22.24달러(11.73%)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1분기 강철을 포스코와 동국제강 등에서 3395억원(5.1%)을 들여 매입했다.

의류관리기 스타일러를 생산 중인 LG전자 직원. /LG전자 제공

LG전자 역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생산하는 H&A(홈어필리언스&에어솔루션)의 주요 원재료인 강철의 평균가격이 2020년 전년 대비 3.9% 상승했고, 올해 1분기 7.5%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LG전자 측은 "국가별 경기부양에 따른 건설 수요 증가로 강철 평균 가격이 증가했다"고 했다. 가격 상승으로 강철이 차지하는 원재료 매입 비중은 지난해 1분기 7.7%에서 올해 1분기 11.3%로 늘었다.

역시 제품 내외장에 사용되는 레진(수지) 가격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레진 평균 가격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둔화로 전년 대비 13.2% 하락했지만, 올해 1분기는 자동차와 가전 판매량 증가, 비대면 포장용기 수요 증가로 7.4% 상승했다. LG전자는 구리 역시 광산 공급 부족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TV·모니터 등을 담당하는 HE(홈엔터티엔먼트) 부문이 매입하고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 상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LG전자 측은 "2020년은 패널 생산량 증가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2019년 대비 7.7% 하락했지만, 2021년 1분기는 유리(글래스), 반도체 등의 패널 원자재 부족으로 2020년보다 28% 상승했다"고 했다. HE 부문의 LCD 모듈 매입 비중은 47.2%에서 올해 63.2%까지 늘었다. 다만 LG전자는 패널 대부분을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로부터 납품받고 있어,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 악화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원재료 가격의 상승세가 올해 내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강철의 경우 철광석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향후 산업에 제조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순우 SK증권 연구원은 "중국 내 감산정책이 시행되고 있고, 재고상황은 평년 대비 낮으며, 미국과 유럽 등에서 공급 부족이 동반되고 있기 때문에 철강 가격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디스플레이 패널 가격 전망 역시 어둡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츠(DSCC)는 LCD 가격상승세가 2분기부터 조정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뒤엎고, 3분기에 정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DSCC는 "지난해 4분기 LCD 패널 가격은 전분기 대비 27% 올랐고, 올해 1분기에는 14.5% 상승했다"며 "이 가격이 올해 2분기에도 17%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분기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폴란드 공장에서 직원들이 세탁기를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업계는 이런 원재료 가격 상승이 기업의 수익 악화는 물론이고, 제품가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LG전자는 "LCD 패널 가격이 디스플레이 수요 증가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TV 원가 압박도 심화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제품 가격 인상과 관련해 업체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수익 개선도 중요하지만, 가격 인상은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또 수요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인위적인 가격 조정은 수익 불안정성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코로나19 국면이 지나가면 TV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라며 "시장 수요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이 원가 상승세를 두고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