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한다. 그중 일부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에 등극했고, 일부는 지난 3월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처럼 더 큰 도약의 기회를 만들었다. K유니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4차 산업혁명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각국의 국수주의 강화 행보 등 녹록지 않은 대내외 환경에서 K유니콘의 선전은 지속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이 유니콘에 다가가는 열정 넘치는 창업자들을 만났다. [편집자 주]

강현욱 비프로컴퍼니 대표. 서울대 사회교육과 중퇴 / 비프로컴퍼니

손흥민(영국 토트넘 홋스퍼 FC), 이강인(스페인 발렌시아 CF), 황희찬(독일 RB 라이프치히) 등의 축구 국가대표 선수만 해외 축구 리그에서 활약 중일까. 관찰 범위를 선수에서 기업으로 넓히면 젊은 패기로 무장한 토종 스타트업을 발견할 수 있다. 축구 데이터 분석 업체 비프로컴퍼니가 그 주인공.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강현욱 창업자 겸 대표이사가 이끄는 스타트업이다.

강 대표는 창업 3년 차이던 2017년 축구 경기·훈련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비프로11’을 들고 무작정 유럽으로 향했다. 비프로11은 특수 카메라로 촬영한 경기 영상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경기 중 일어나는 모든 플레이 상황을 판단·분석하는 소프트웨어다. 계약을 맺은 팀과 선수단에 경기 영상과 분석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한다.

비프로11의 진가를 알아본 유럽 축구 5대 빅리그(영국·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의 주요 팀을 비롯한 전 세계 700여 개 팀이 강 대표와 마주 앉아 계약서에 서명했다. 비프로컴퍼니는 2018년 7월 860만달러(약 96억원)를 투자받은 데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6월에는 1000만달러(약 112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 영국 런던에 거주 중인 강 대표와 4월 28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스포츠 분석 기업 중 첫 번째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되고 싶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축구 데이터 분석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한게 신선하다.

”운동 즐기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플레이 영상과 경기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한다. 프로 선수가 아니어도 말이다. 나 역시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뛴 경기 흔적을 원할 때마다 꺼내 보고 싶었다. 대학교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 코딩을 배워 축구 기록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게 된 계기다. 이 앱이 아마추어 축구팀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수요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한 축구 데이터 분석 업체와 함께 개발한 경기 영상 분석 프로그램이 2016년 K리그 유소년 대회에서 쓰였다. 이를 계기로 국내 거의 모든 중·고교 축구대회에서 비프로11을 사용했다.”

해외 진출은 언제부터 고민했나.

”2016년 전국의 K리그 팀을 돌며 코칭스태프와 선수를 만났다. 그들이 경기 분석 영상을 왜 보는지, 어떤 기능을 주로 원하는지 등을 알고 싶었다. 그때 우리와 만나 비프로11을 경험한 선수가 3년 후인 2019년 U20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인 오세훈(김천 상무 프로축구단), 정우영(독일 SC 프라이부르크) 등이다. 선수와 구단의 확실한 요구를 파악한 다음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2017년의 일이다. 손흥민 선수가 활약했던 함부르크 지역에 기반을 잡고 축구팀 접촉을 시작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팀이 있나.

”독일 FC 쾰른,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영국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등 많은 팀이 떠오르는데, 한 팀만 꼽자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볼로냐 FC 1909다. 비프로11 시연을 접한 볼로냐 코치들이 ‘바로 이거야’라고 외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미팅은 화요일이었고, 이틀 뒤인 목요일에 곧바로 카메라 설치와 분석을 요청하더라. 당시 볼로냐는 강등권이었는데, 비프로11을 쓴 이후 1패만 하고 남은 경기에서 다 이겼다. 결국 10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비프로11의 어떤 점이 축구팀을 사로잡았다고 보나.

”경기장에 설치된 3대의 4K 카메라가 경기나 훈련 상황을 모두 찍는다. 이 영상은 사용자 디바이스로 실시간 전달된다. 단순히 녹화본만 전송되는 게 아니다. AI가 각 선수의 이동 거리, 패스 횟수 등을 파악한다. 수비 라인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인접한 세 선수가 삼각 간격을 잘 유지하는지, 미드필더의 공간 침투가 효과적인지 등도 AI가 빠르게 분석한다. 모든 분석 데이터는 영상과 함께 제공된다. 도입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카메라만 설치해두면 나머지는 비프로11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해준다. 선수가 웨어러블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설 필요도 없다. 한 번 비프로11 서비스를 이용한 팀은 대부분 재계약한다.”

AI가 100% 정확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회사 내부의 분석 전문가 12명이 AI의 빈틈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프리랜서 분석관 120여 명도 별도로 관리한다. 이들이 언제든 와서 분석 업무를 지원할 수 있도록 백오피스 인프라 투자에 심혈을 기울인다. 한국 아카데미에서는 전문가 육성 교육도 진행한다.”

강현욱 비프로컴퍼니 대표가 ‘비프로11’으로 축구 경기를 분석하고 있다. / 비프로컴퍼니

코로나19 사태는 잘 견뎌냈나.

”작년에 많은 구단이 경기 중단에 따른 재정적 타격을 입었다. 그 영향이 우리에게도 오더라.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힘들었다. 다행히 리그가 다시 열렸고, 비프로컴퍼니는 코로나19 시국에도 불구하고 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세 배나 늘었다. 덕분에 후속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투자받은 돈은 AI 분석 성능 고도화에 주로 쓰고 있다.”

비프로컴퍼니에 ‘유니콘’은 어떤 의미일까.

”창업 초기에는 제품이 좋으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더라. 회사 자체에 대한 신뢰 때문에 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장기간 쓰기도 하니까.  그런 고객에게 우리를 어필하려면 제품 품질 이상의 어떤 신뢰 증표를 제시해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유니콘 등극은 업계에서 신뢰를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유니콘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스포츠 분석 유니콘 탄생에 도전해 보겠다. 영상 분석 데이터는 축구화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요즘 축구 경기를 할 때 축구화는 기본이지 않나. 가볍게 모이는 동호회에서도 말이다. 지금까지 영상 분석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앞으로는 모든 스포츠 인구에게 보편화될 것이다. 엘리트 스포츠 영역을 벗어나 점점 아래로 시장이 열리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낀다.”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영상 분석을 넘어 이적이나 선수 발굴 시장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고 본다. 수만 번의 경기와 수만 명의 선수 데이터가 비프로11에 쌓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유망주 발굴과 적정 이적료 산출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넥스트 K유니콘] ①K유니콘의 부상과 과제

[넥스트 K유니콘] ②<Interview> 美 유니콘 즈위프트 창업자 에릭 민

[넥스트 K유니콘] ③<Interview> 박재욱 쏘카·VCNC 대표

[넥스트 K유니콘] ④<Infographic> 넥스트 K유니콘

[넥스트 K유니콘] ⑤<Interview> 김용현 당근마켓 대표

[넥스트 K유니콘] ⑥<Interview> 이현무 아이유노미디어그룹 대표

[넥스트 K유니콘] ⑦<Interview> 강현욱 비프로컴퍼니 대표

[넥스트 K유니콘] ⑧<Interview>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넥스트 K유니콘] ⑨<Interview> 네이슨 밀라드 G3파트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