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빅2가 나란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확대를 밝힌 가운데, 삼성전자는 시장 점유율 1위 대만 TSMC를 따라잡으려는 '집중' 전략이 돋보이는 반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치열해지고 있는 미세공정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8인치(200㎜) 파운드리를 겨냥한 '틈새' 전략이 엿보인다.

2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회사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목표에 따라 133조원을 투자하려던 계획을 확대 수정해 총 171조원을 해당 분야에 쏟아붓기로 했다. 애초 계획에서 늘어난 38조원 전액은 파운드리 몫으로, 확실하게 집중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3라인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보고'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투자 취지를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창업과 육성, 생산 인프라 확충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점차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대만 TSMC를 따라잡기 위한 목적이 이번 투자에 있다고 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56%로 압도적인 1위, 삼성전자가 18%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TSMC는 지난 2019년 48.1%에 비해 8.9%포인트 늘었고,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9.1%에서 1.1%포인트 하락, 점유율 차이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는 전 세계에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두 회사는 이 시장점유율에서도 각축을 벌이고 있다. 올해 예상 점유율은 TSMC 60%, 삼성전자 40% 등이다. 반도체는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얼마나 더 세밀한 회로를 그려 넣을 수 있느냐에 따라 성능과 전력효율 등이 결정되는데,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현재 두 회사는 모두 5㎚ 공정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업계 평가는 TSMC가 더 높은 편이다. 삼성전자의 5㎚ 공정은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에서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율이 낮을 경우 반도체의 안정적인 수급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 파운드리를 맡기는 고객사들은 주문을 꺼리게 된다. 현재 애플이나 퀄컴, AMD 등 대형 팹리스들이 TSMC에 반도체를 맡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대만 남부과학산업단지(난커·南科)에 위치한 TSMC의 팹 16. /TSMC 제공

삼성전자는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5㎚ 공정 수율을 올려 경쟁력을 확보하고, 증설을 통한 생산량 확대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3㎚ 공정까지 양산에 들어가게 되면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TSMC와 충분히 맞붙어 볼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번 38조원 추가 투자는 이런 경쟁력 확보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다만 TSMC도 삼성과의 격차 유지 혹은 더 벌리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에 3㎚를 능가하는 2㎚ 공장 증설도 추진 중이다. 이미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약 13조원을 투자해 5㎚ 공장을 더 만들기로 했고, 3㎚ 등 공장 5개의 증설을 검토 중이다. 총투자금액은 113조원 수준이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투자 계획을 갖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로드맵은 나오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투자지로는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가 꼽히는데, 우리 돈으로 약 20조원이 공장 증설에 사용될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 최초의 5㎚ 공장이 이곳에 건설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TSMC가 미 정부의 정책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계획이 다소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라며 "곧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삼성전자가 투자를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고 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세계 최대 규모급 반도체 공장인 M16가 위치해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는 틈새시장을 노린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쇼티지)의 진원지로 여겨지는 8인치 파운드리가 그 주인공이다.

먼저 SK하이닉스는 그간 D램에 치중했던 회사 사업 구조를 낸드플래시와 파운드리로 넓힌다는 전략이다. 이미 낸드 분야의 경우 지난해 발표한 세계 6위 인텔 낸드 부문의 기업결합 심사가 세계 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중으로, 올해 말이면 해당 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SK하이닉스는 세계 4위의 낸드플래시 기업에서 2위 기업으로 단숨에 규모가 커진다.

낸드 분야 세계 2위 일본 키옥시아에 대한 투자도 올해 하반기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전략적 투자자(SI)로, 약 4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키옥시아는 연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의 경우 SK하이닉스는 현재 TSMC와 삼성전자 등이 경쟁하는 12인치(300㎜) 웨이퍼 대신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시장경쟁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삼성전자 역시 8인치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으나, 주력은 아닌데다 이미 다른 기업들도 12인치 웨이퍼로 체질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보통 반도체 업계에서는 웨이퍼 면적이 넓으면 반도체도 그만큼 많이 생산할 수 있어 효율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8인치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게 됐다.

하지만 8인치 웨이퍼는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특성이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펜트업(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는) 효과로 가전, IT 기기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8인치 웨이퍼 기반의 마이크로 콤포넌트(MC),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이미지센서(CIS) 등의 수요 역시 폭증했고,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린룸.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는 국내 팹리스들이 대부분 8인치 웨이퍼에 기반한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고, 또 향후 시장성도 상당할 것으로 예측한다. 게다가 글로벌 경쟁사가 세계 10위인 DB하이텍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점과, 대다수 파운드리 기업들이 8인치 장비를 모두 처분해 추가적인 경쟁이 벌어질 여지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8인치 파운드리 장비 확보의 어려움으로 증설보다는 인수합병(M&A)에 더 무게가 실린다. 이미 키파운드리와 협상 절차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키파운드리는 1979년 설립된 LG반도체가 모체로, 1999년 현대전자와 합병하면서 하이닉스반도체 소속이 됐고, 이어 2004년 하이닉스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부문을 매각해 매그나칩반도체로 이름을 바꿔 해외 자본에 매각됐다. 이후 매그나칩에서도 독립해 파운드리 사업만 별도 전개하고 있다.

키파운드리는 지난해 3월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한 펀드 매그너스 PEF에 5100억원에 인수됐는데, SK하이닉스는 매그너스에 2073억원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키파운드리 인수에 참여했다. 당시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리를 우회 인수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다만 SK하이닉스는 키파운드리 인수 협상과 관련해 "여러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라며 "(키파운드리 인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