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스마트워치 시장에서도 승부수를 띄웠다. 차기 갤럭시워치에 7년간 고수해온 자체 개발 운영체제(OS) ‘타이젠’ 대신 타이젠과 구글 OS를 통합한 새로운 OS를 탑재하기로 한 것이다. 하나의 OS로 기기간 매끄럽게 연결되는 경험을 주는 애플처럼 구글 안드로이드로 운영되는 스마트폰과 연동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구글은 19일 오전 2시(현지시각 18일 오전 10시)에 열린 구글 최대 규모의 개발자 컨퍼런스 ‘구글 I/O 2021’의 기조연설에서 “웨어OS와 삼성전자의 타이젠을 결합한 ‘웨어러블 통합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양사가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웨어OS는 구글이 개발한 웨어러블 기기 전용 안드로이드 OS다.
이날 소식을 전한 외신 씨넷(Cnet)은 “새로운 통합OS는 올 가을에 출시될 예정인 삼성전자의 차기 갤럭시워치(갤럭시워치4)에 탑재될 예정이다”라며 “아직 어떤 기능이 추가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구글에 따르면 이 OS는 기존 OS보다 앱을 최대 30% 빠르게 구동하고 소비 전력을 낮춰 배터리 수명을 늘릴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갤럭시워치 시리즈와 TV·냉장고 등 일부 가전에 자체 개발한 리눅스 기반 OS인 타이젠을 탑재해 왔다. ‘OS 독립’을 통해 구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애플이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되자 삼성전자가 ‘구글과의 동맹'을 택한 것이다. 씨넷은 “삼성전자와 구글의 협력은 웨어러블 분야의 ‘저스티스 리그'처럼 보인다”라며 “애플워치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한 안드로이드 스마트워치의 많은 변화를 보여준다”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10%로 1위 애플(40%)에 한참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전년 동기(2019년 4분기) 점유율은 애플 34%, 삼성전자 9%였다. 1년 사이에 격차가 25%포인트에서 30%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갤럭시워치가 애플워치에 비해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른 모바일 기기와의 연동성이 낮다는 점이 삼성전자가 밀리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애플은 애플워치 시리즈의 ‘워치OS’, 아이패드 시리즈의 ‘아이패드OS’ 등이 아이폰 시리즈의 iOS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한 사용자가 여러 모바일 기기를 오가면서 동일한 앱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기기 간에 쉽게 데이터를 옮길 수 있다고 평가 받는다.
반면 갤럭시워치는 구글 안드로이드 기반의 자사 스마트폰, 태블릿과의 OS가 달라 연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일례로 스마트폰처럼 카카오톡 앱을 사용할 수 있는 애플워치와 달리, 갤럭시워치는 타이젠 버전의 앱이 따로 없어 문자메시지처럼 수신 확인과 간단한 답장 정도의 기능만 사용 가능하다.
특히 양사는 이르면 올해 출시되는 스마트워치 신제품에 사상 처음으로 채혈 없이 빛으로 혈당을 잴 수 있는 기능 탑재를 준비하는 등 스마트워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 주변기기로서 기기 간 연동성 역시 더 중요해질 전망인 만큼, 이대로라면 삼성전자가 스마트워치 경쟁에서 애플보다 점점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으로 삼성전자가 그간 미련을 가졌던 모바일 OS 독립의 꿈을 포기하게 됐지만, 구글 등의 IT 동맹군을 모아 ‘애플 생태계’에 대항할 ‘갤럭시 생태계’를 넓힐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씨넷은 “구글과 삼성전자의 협력은 광범위해 보인다”라며 “양사는 웨어OS의 차기 (업데이트) 버전뿐만 아니라 피트니스 센서 지원과 차기 스마트워치 칩셋 (개발) 등을 위한 기술까지 공동 설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와도 협력해 갤럭시 생태계의 확장을 노리고 있다.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 MS의 OS(윈도)를 탑재한 노트북 ‘갤럭시북’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연동성을 높이기 위해 각 사와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제 사람들은 기기 하나만으로 일하지 않는다”라며 “삼성이 잘하는 스마트폰의 경험을 노트북에도 이식하는 동시에, 노트북과 다른 갤럭시 기기와의 연동도 대폭 강화해 노트북을 갤럭시 생태계로 포함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갤럭시워치 외 ‘핏빗’ 등 안드로이드 진영의 다른 웨어러블 기기들에도 새로운 통합OS를 탑재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현재까지 출시된 갤럭시워치 제품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이 OS로 업데이트되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답했다고 씨넷이 전했다. 갤럭시워치는 구매일로부터 최대 3년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지원을 받지만, 새로운 OS 업데이트 지원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씨넷은 갤럭시워치4가 이전 제품들처럼 회전 베젤 디자인을 갖출 것이라고 했다. 구글 I/O가 열리기 전인 전날 미국 IT매체 샘모바일은 “차기 갤럭시워치는 최대 3가지 모델로 출시될 수 있고, 이르면 오는 8월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폴드3, 갤럭시Z플립3와 함께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