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웅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ADC신약연구소장이 지난 8월 대전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샌디에이고 쉐라톤 호텔에서 ‘월드(World) ADC 2022′가 열렸다. ‘월드 ADC’는 항체결합의약품(ADC)만 다루기 때문에 미국종양학회(ASCO)나 유럽종양학회(ESMO)와 비교하면 소규모 학회로 통한다.

그런데 이날 영국 익수다 테라퓨틱스의 유방암 치료제 신약(LCB14) 임상 1상 중간 결과가 발표된 강연장은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발표자인 로버트 러츠(Robert Lutz) 익수다 최고과학책임자(CSO)가 강연장에 들어서자 복도에서 서서 보는 것을 넘어 바닥에 주저앉아 발표를 듣는 사람까지 생겼다. 학회 전체 참석자가 800여명 정도인데, 이 자리에만 200여명이 몰렸다.

LCB14는 국내 바이오벤처인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해 익수다에 기술이전한 ADC 항암제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정철웅 레고켐바이오 ADC신약연구소장은 “임상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참석자들이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찍기 위해 스마트폰을 일제히 들어 올리면서 단체로 만세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 소장은 “이날 발표 자리에 참석자들이 많았던 것은 임상 결과가 좋은 것을 축하는 인파도 있겠지만, (ADC항암제를 개발하는) 경쟁자들의 관심도가 높았던 이유도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ADC 항암제는 항암제 중에서도 최신식 제품에 속한다. 암세포 정상세포 할 것 없이 다 공격하는 케미칼 항암제를 ‘폭탄’에 비유한다면, ADC 항암제는 크루즈 미사일이다. 암세포를 제거하는 폭탄(케미컬 항암제)을 미사일(항체플랫폼)에 실어,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공격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ADC 항암제는 불과 3년여 전까지 이론 상으로만 존재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ADC방식의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enhertu)’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받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엔허투는 임상 3상에서 기존 치료제를 압도하는 효과를 보였고, 이후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은 ADC 항암제 개발에 일제히 뛰어들었다.

지난 7일(현지시각) 월드ADC 2022가 열린 미국 샌디에이고 쉐라톤 호텔 강연장 모습. 강연 참석자들로 꽉 차 있다. /정철웅 소장 제공

레고켐바이오는 ADC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바이오 기업이다. 자체 플랫폼과 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빅파마 등에 기술 이전해서 수익을 내는 사업구조다. 창사 이후 누적 마일스톤(계약금액)만 5조원에 이르며, 지난 2020년에는 한해 동안 4건의 기술 이전에 성공해 연간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마일스톤으로 이름을 알렸다.

정 소장은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분자세포 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연구위원을 지냈다. LG생명과학에도 근무하며 치매, 비만, 간질환, 바이오시밀러, 연구기획 등의 업무를 했다.이후 북경한미약품 연구소장을 거쳐 최근 레고켐바이오의 ADC 연구소장으로 합류했다. 정 소장을 지난 8월 대전 레고켐 본사에서 만나 인터뷰하고, 현지 소식을 전해 듣기 위해 지난 8일 오전 추가로 전화 인터뷰했다. 다음은 정 소장과의 일문일답.

一 LCB14의 임상 1상 중간 결과는 어땠나. 경쟁약물은 어떤 것이 있으며, 이와 비교해서 우수한 것으로 나왔나.

“우리의 경쟁약물로 엔허투와 로슈의 케싸일라(Kadcyla) 정도가 있다. 안전성과 효능을 비교해서 충분히 경쟁력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임상 1a상에서 객관적반응율(ORR)은 66.7%였고, 임상1b 환자를 포함하는 전체 24명 기준으로는 완전관해(CR) 1명을 포함해 객관적반응률이 46%로 나왔다.”

一 좀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나.

“객관적반응율은 약을 투여했을 때 항암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는 환자의 비율이라고 보면 된다. 완전관해(Cr)는 완치된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렇다면 1a에 참여한 환자 중에서 약물에 대한 효과를 보인 비율이 66.7%고 2상 권장용량인 2.3㎎ 용량으로 임상 1b에서 진행한 24명 중에서는 46%가 효과를 보였다는 뜻이다.”

一 임상 1b상에서 효과를 보인 환자 비율이 46%면 적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임상 1b는 대다수 환자가 아직도 약물 치료 중이다. 아직 투여를 마치지 않은 환자가 많아서 판단하기 이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임상 진행 결과는 오는 12월에 미국 샌안토니오 유방암 학술대회(SABCS)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一 LCB14에 레고켐바이오의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안다. 어떤 기술이 적용됐나.

“우리의 자체 항체플랫폼인 콘쥬올(Conjuall)을 적용했다. 콘쥬올을 적용해서 글로벌 임상 1상을 마친 항암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기술을 적용한 첫 임상 소식이 좋게 나왔으니 앞으로 기대가 된다.”

一 간략히 회사 설명 부탁드린다.

“우리는 지난 2006년에 설립된, 항체결합의약품(ADC)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다. 우리는 플랫폼을 갖고 있고, 다른 항체를 갖고 있는 회사들과 협력해서 신약을 만드는 구조다. 항체와 항체가 갖는 세포를 선택해서 전달할 수 있는 능력, 톡신이 가지고 있는 독성 등을 결합해서 크루즈 미사일을 제조한다고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一 ADC와 면역항암제는 어떤 점이 다른가.

“면역항암제는 몸속 면역세포들에 특정 암세포 몽타주를 쥐어주고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이 원리다. 다만 면역항암제는 자가면역질환 위험성이 있지만 ADC는 그런 가능성이 없어서 주목받는 것으로 안다. 현재 ADC로 허가받은 약물은 전 세계적으로 11개 정도 있다.”

一 회사 직원 규모는 얼마나 되나.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132명 정도다. 이 가운데 110명이 연구원이다. 생산 인력은 단 한 명도 없다.”

레고켐바이오 대전 신사옥 휴게실 전경. /김명지 기자

레고켐바이오는 지난해 사옥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대전 신탄진 구시가지에서 대전 신도시 인근으로 옮겼다. 정 소장은 신사옥을 소개하면서 “우수한 인재들을 연구원으로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며 “회사 소개를 잘해 달라”고 귀띔했다. 신사옥 5층에는 직원들을 위한 운동실과 수면실은 물론이고, 다양한 책과 블록 게임을 하면서 쉴 수 있는 휴게실도 마련돼 있었다.

一 사옥이 정말 근사하다. 하지만 레고켐바이오의 인지도는 좀 낮은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제약·바이오 기업이 그렇다. 현재 매출액 규모로 전 세계 상위 제약사 1위부터 10위까지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에 있다. 아시아에 있는 회사는 일본의 다케다제약 정도가 유일하다. 사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생각하면 삼성과 현대라는 회사 브랜드가 번뜩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의약품은 그렇지 않다. 전문의약품은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고르지 않고, 의사나 약사들이 처방하는 대로 받기 때문이다.”

一 어떤 의미인가.

“산업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회사의 브랜드가 매출에 중요한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소비재와 달리 바이오 의약품은 제품의 경쟁력, 혁신만으로 국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제품력을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어내서 히트를 치기만 하면 충분히 상위 제약사로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와 바이오엔텍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一 기술력만으로 승부하기엔 글로벌 빅파마의 벽은 높지 않나.

“그것도 맞다. 하지만 상위 10위권 글로벌 제약사들이 연간 연구개발(R&D)에 쏟아 넣는 비용은 최대 12조원에 이른다. 한국에 있는 모든 대학, 기업의 연구개발비를 합쳐도 도달할 수 없는 그런 금액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선천적으로 외국과 또는 경쟁력 있는 파트너와 협업을 해야만 한다.”

一 어떤 파트너와 협업을 해야 하나. 북경한미약품의 연구소장을 지냈는데, 중국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나.

“사실 미국의 파트너들이 가장 좋은데, (우리 같은 규모의 회사는) 미국의 이름 있는 파트너를 만나서 미국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눈여겨보는 것이 중국 시장이다. 유럽이나 일본의 의약품 시장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중국은 계속 팽창하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국 시장 비율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은 시장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여러 기관에서 예측을 하고 있다.”

一 그러나 중국 의약품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아직은 그렇지만, 중국은 시장 규모뿐만 아니라 바이오메디컬 연구 분야에서 지금 선진 국가로 발걸음하고 있다. 논문의 수나 특허의 수를 봐도 그렇다. 최근에 CAR-T(키메라 항원수용체 T)세포 치료제나 유전자 가위와 같은 아주 유망한 기술은 중국의 임상 숫자가 미국보다 앞서고 있다.”

一 국내 제약·바이오 대기업이 중국과 협력하는 사례가 있나.

“한미약품이 대표적이지 않나. 여기에 녹십자가 현지 법인을 설립해서 혈액제제 사업을 하고 있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중국 바이오 기업인 3s 바이오와 협업을 위해 업무협력 체계를 구축해 중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SK바이오팜도 중국 진출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것으로 안다. 이 밖에 바이오벤처에서 중국으로 기술이전도 많이 하고 있다. 기술 이전 규모가 발표되지 않고 있지만, 수백억에서 수천억 규모를 이룬 것으로 안다.”

一 최근 독일 바이오기업인 글라이코토프와 항체기술 도입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안다. 어떤 물질을 도입하는 건가.

“하하 그건 아직 공개하기가 어렵다. 글라이코토프가 보유하고 있는 항체를 들여온 건 맞다. 항체를 들여와서 우리가 ADC를 완성 후 공동개발 하는 구도다. 앞으로 임상시험계획(IND) 제출은 물론 임상, 허가 및 상업화까지 협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