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1000년 전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 사람이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흔적이 발견됐다. 학계에서 실제 수술 흔적으로 인정받으면 가장 오래된 다리 절단 수술 기록이 된다.
호주 그리피스대의 막심 오버트 교수와 팀 라이언 멜로니 박사 연구진은 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2020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리앙 테보 석회암 동굴에서 발굴된 3만1000년 전 인간 유골에서 왼쪽 발이 절단 수술을 받은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절단 수술 역사 2만년 이상 앞당겨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절단 수술은 7000년 전 신석기 시대 프랑스 농부가 수술로 왼쪽 팔의 팔꿈치 위를 절단 받고 부분적으로 회복된 사례이다. 이번 유골의 주인공은 수술을 받고 몇 년은 더 살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당시 아시아 열대지방에서 이제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전부터 고도의 수술이 발달한 것을 의미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보르네오섬 한 동굴에서 발굴된 사람 유골에서 왼쪽 다리의 아래쪽 3분의 1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절단면이 균일하고 잘 아문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사고로 다리를 잃지 않고 의도적으로 자른 것으로 추정됐다. 사망 당시 나이는 19~20세 정도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뼈가 아문 정도로 보아 ‘테보1′이라고 이름 붙인 유골의 주인공이 10~14세때 수술을 받고 6~9년은 더 살다가 죽었다고 설명했다.
유골 주인공이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절단 수술을 받고 치료를 잘 받았다는 것은 형벌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유골이 제대로 매장된 점도 형벌을 받은 게 아니라는 증거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유골 아래와 위 부분 흙이 다르고 머리와 팔 위에 석회암 돌들이 있었다. 사망 후 시신에 흙은 덮은 것이다. 등 뒤에는 당시 염료로 쓰던 붉은색 황토도 발견됐으며, 도구에 많이 쓰인 석영 조각들도 나왔다.
◇식물에서 감염 막는 항생물질 추출한 듯
절단 수술은 인체 해부학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과, 감염과 출혈을 막을 수 있는 의료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 테보1의 절단 부위에는 감염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약 1만 년 전부터 농업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한 곳에 정착하면서 의학이 발전했다고 추정됐다.
오버트 교수는 이번 결과는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수술로 인한 출혈과 감염을 막을 정도의 의료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라며 “열대지방에서는 상처가 나면 감염이 더 잘된다는 점에서 당시 식물에서 항생물질을 추출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상당한 수준의 문화를 보유했다고 추정된다. 오버트 교수는 지난 2019년 네이처에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한 석회암 동굴에서 4만4000년 전에 그린 인류 최고(最古)의 사냥도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시기에 동물을 그린 동굴 벽화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사람과 동물이 모두 등장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로는 가장 오래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학자들은 이번 결과가 수술의 역사를 고대까지 올린 놀라운 발견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확증을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영국 더럼대의 샬롯 안 로버트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여러 유골이 섞여 있고 남녀의 특성이 모두 나타나 정확한 성별 확인을 위해 DNA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절단 부위를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수술 후 뼈가 아문 것을 조직학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