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인천 연수구 송도 컨펜시아에서 '2022케이펫 페어 송도'가 열렸다. /뉴스1

국내 한 제약사는 최근 외국 거래처로부터 동물용 항생제 생산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해야 했다. 같은 성분의 사람 대상 주사제를 만들고 있는 이 회사는 처음에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사람용으로 허가된 의약품이라도 동물용으로 제조해 판매·수출하려면 농림축산식품부 허가를 새로 받아야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의약품 제조 공장에 동물약 의약품을 만든다고 다시 허가를 받으라는 건 이중 규제다”라고 말했다.

사람에게 쓰이는 의약품을 동물 의약품으로 생산할 때 받아야 하는 허가⋅심사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6년여 만에 재추진된다. 사람⋅동물 겸용 의약품에 대한 인허가 완화는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6년 바이오헬스 규제개선 과제로 선정돼 추진됐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됐다. 이 규제 개선이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추진되는 것이다.

6일 조선비즈가 확보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약바이오 최고경영자(CEO) 워크숍 식약처창 초청간담회 보고 문서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지난 7월 의학 분야 규제혁신 대토론회에서 제약업계로부터 의견을 취합했고, 관련 내용을 검토해 ‘규제혁신 추진 방향’을 발표했는데, 여기 담긴 것이다.

현행 약사법에서 의약품 제조시설에서 식품과 화장품까지도 생산이 가능하지만 동물 의약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동물의약품은 ‘사료관리법’ 등 농식품부 소관 법률로 관리된다. 이 때문에 국내 동물약 시장이 커져도 국내 제약사들은 식약처와 농림축산식품부 간 장벽에 막혀 시장 진출에 애를 먹고 있었다.

사람과 동물에 동일하게 사용되는 의약품에 대한 인허가 규제 개혁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6년 추진됐다. 그해 10월 국무총리실 바이오헬스 분과위원회의 규제개선 과제로 선정됐고, 국정조정실 규제조정회의를 거쳐 2018년 3월 농식품부가 애완용 동물약의 경우에는 품목허가 요건을 대폭 간소화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규제개혁에 필요한 농식품부⋅해수부 소관의 ‘동물용의약품 취급규칙’이 개정되지 않았고, 규제 개선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이번에 정권이 바뀌자 제약사들이 규제 개혁을 재차 요청했다. 식약처는 “동물용 의약품 제조 인허가를 완화하고, 제약사에서 사람과 동물에게 동일하게 사용되는 의약품의 경우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라고 답변한 것이다.

식약처는 “‘동물용 의약품 등 취급규칙’ 개정은 법률 소관 부처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라며 “국정조정실, 농식품부 등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도 했다. 문제는 규제 개선에 협조가 필요한 농식품부의 반응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동물약을 만드는 시설에서 OEM 방식으로 여러 회사의 동물약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제도적으로 허용돼 있는데, 굳이 사람 약 시설에서 동물약을 같이 만들어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현재 의약품 전반은 식약처가 관할하지만 동물의약품은 농식품부가 허가하는 사료회사나 동물용 의약품 제조업자가 생산하게 돼 있다. 반대로 미국은 식품의약국(FDA), 유럽은 유럽의약청(EMA) 한 곳에서 인간과 동물의약품 허가를 모두 관장하고 있어 제약사 진출에 걸림돌이 없다.

항생제와 해열제 등 일부 의약품은 동물약과 사람약 성분에 동일한 제품이 많고, 만드는 방식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유한양행, 대웅제약 등 전통 제약사들도 동물 의약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9000억원에서 2021년 4조1739억원으로 성장했으며, 동물의약품 시장도 같은 기간 1조5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이 나날이 성장 중인 것을 고려하고, 의약품 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업계와 만나는 자리를 자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산업 예상 규모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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