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강현재 교수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올해 4월 미국심장학회(ACC)의 아시아 2022 춘계학술대회가 경북 경주에서 열렸다. 미국심장학회가 아시아에서 학회를 연 것은 2020년 싱가포르가 처음이고, 코로나19로 2년여 만에 열린 두 번째 회의가 한국이었다. 30여년 전만 해도 국내 순환기내과 의료진은 ACC 학회에 초청 받으면 동료들과 축하 잔치를 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의료의 글로벌 위상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날 학술대회의 큰 주제는 '코로나19′였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지목된 심근염 등에 대한 논의는 일부였고,그 대신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격리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갑자기 바뀌면서 수 년 후 심혈관 질환 환자가 급증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대한심장학회 학술이사를 맡은 강현재 서울대 의대 순환기내과 교수는 "영양 상태는 그대로인데 활동량이 줄면서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비만 및 대사증후군 인구가 늘어났다"라며 "몇 년 후에 전 세계적으로 심혈관 질환이 갑자기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고령화와 맞물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특히 "(한국 사람은)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달리 고지혈증은 덜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 결과 국내에서는 허혈성 심질환(ACS) 환자 발생률이 늘고 있다고 한다. ACS는 심근경색을 포함해 심근경색으로 갈 수 있는 모든 질환을 뜻한다.

강 교수는 "심혈관계 질환은 여러 상황이 모두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하나만 관리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라며 '최장수 건강 국가'로 꼽히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일본의 심혈관 질환 사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전 세계 심혈관 질환 사망률에서 일본이 한국을 역전했다고 한다. 한국이 상황이 개선된 게 아니라 일본 상황이 악화된 탓이다.

강 교수는 "일본은 심혈관질환의 예방 관리 교육 및 체계가 조밀하고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재정 문제 등이 겹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라고 설명했다. 사회 정책 변화가 국민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같은 학교에서 전문의와 박사를 마친 강 교수는 미국 듀크대 의대에서 임상의학으로 교환 교수를 지냈다. 심장학 분야 세계적 석학인 김효수 대한심장학회 이사장(서울대 의대 순환기내과 교수)의 제자로 김 교수 팀에서 심근경색 환자의 사망과 심부전을 예방하는 심근경색 세포치료법을 연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一한국의 심혈관질환 사망률은 아시아 지역 평균 대비 10%가량 낮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되는 상황 아닌가.

"국내 심혈관질환 관리가 세계적인 수준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혈관질환은 여전히 국내 사망원인 2위에 달한다. (한국 사람은)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달리 고지혈증(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경우)은 덜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투약을 시작하더라도 일시적으로 수치가 일단 개선되면 임의로 중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거기에 최근 허혈성 심질환(ACS) 환자 발생률이 늘고 있다."

서혜선 부산대학교 약학대 교수팀 제공

一허혈성 심질환(ACS)이라는 게 뭔가.

"심근경색을 포함해서 심근경색으로 갈 위험도가 높은 심장 질환을 통칭한다. 급성관동맥 경화증도 이 중 하나다. 혈전이 생겨서 혈관이 막히면 피가 통하지 않아서 심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망에 이른다. 협심증은 나이, 비만, 당뇨, 고혈압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생활 및 식습관 교육을 통해서 2000년대 초반부터 협심증 사망률이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지금이 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一이유가 있나.

"심혈관계 질환을 '선진국병'이라고 부른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배도 나오고 당뇨도 생기고 혈압도 고지혈증도 늘어나고, 나이가 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란 것이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대국민 교육과 관리를 통해 생활 습관을 개선했고, 그 결과 사망률은 줄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추세다. 심혈관 질환 전체 사망자는 늘고 있지만, 나이나 성별을 고정하면 사망률은 줄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로 병이 있는 사람은 늘고 있다."

강 교수는 "나이가 들면 이런 병(심혈관 질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도 말했다. 심혈관질환은 여러 만성 질환이 맞물려 있다. 중성지방은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LDL)콜레스테롤은 증가시키고,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고밀도(HDL)콜레스테롤 수치는 줄인다. 저밀도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지면 고지혈증으로 발전한다.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생기는 대사 질환은 다시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로 이어진다. 그래서 어느 한 수치만 관리한다고 해서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一그렇다면 최장수 국가인 일본의 심혈관 질환 현황은 어떤가.

"일본은 한국보다 생활 습관 측면에서 건강한 사람이 많다. 식습관도 상대적으로 건강하다. 생활 패턴도 우수하다. 한국처럼 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다. 외식물가가 비싸서 집에서 해 먹는다. 의료 시스템도 잘 돼 있고, 의료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의료의 자율성이 높아서, 어떤 병원에서는 이틀이면 퇴원해도 될 만성질환 환자를 2주 입원 치료를 한다. 그리고 잘못된 생활 습관까지 싹 뜯어 고친다. 그런데 일본의 상황이 몇 년 전에 확 나빠졌다. 지금은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한국보다 오히려 조금 높다."

一원인이 있나.

"고령화도 영향이 있겠지만, 의료 급여 기준이 엄격해지고 재정이 악화되면서 관리가 악화된 것이 원인이 아닌가 추정한다. 일본이 그 전까지만 해도 환자 교육이나 지역 의료 시스템에 한국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

一그렇다면 어떻게 좀 대비해야 하나.

"예방이 중요한데, 만성질환의 경우 본인이 관리하지 못한 개인적 문제라고 인식되다 보니 국가 정책으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예방 측면을 떠나서, ACS와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많은 환자들이 합병증으로 오랜 기간 병상에 있다가 돌아가시기도 하지만 심근경색, 뇌졸중처럼 급성기에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一응급실에 찾아 온 환자를 살려내야 한다는 뜻인가.

"그것도 맞지만, 환자를 빨리 응급실에 보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전조 증상이 나타난 후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안에 병원에 도착하면 의료진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있는데, 그렇게 도착하는 사람이 3명 중 1명도 안 된다."

一앰뷸런스 시스템의 문제인가.

"그게 아니다.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것이다. 병원에 제 시간에 도착하는 환자 3명 중 1명만 119를 타고 온다. 증상을 느끼고 병원에 가야겠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적고, 병원에 가장 빨리 오는 방법을 아는 사람도 적다는 뜻이다.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 망설이지 말고 병원부터 가라'고 꼭 말하고 싶다."

一전조 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나.

"흉통이 가장 대표적이다. 심근경색의 경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심한 흉통이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식은땀이 나거나 목이나 등이나 왼쪽 팔 쪽으로 번져 나가면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크다. 고령에 당뇨가 있는 환자는 흉통이 아니라 갑자기 심하게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 밖에 의식이 흐려지면서 쓰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어지러우면서 혈압이 떨어지면 심근경색이다. 마지막으로 드물지만 (심장의) 아래쪽 부위가 경색이 생기면 복통처럼 증상이 나타난다."

一급성으로 응급실에 가지 않게 예방하는 방법도 궁금하다. 잘 듣는 약이 있나.

"고지혈증의 경우 '스타틴 계열'의 약이 주로 쓰인다. 약의 효과가 너무 좋아서 수십년 동안 신약 개발 도전이 없을 정도다. 예를 들어 스타틴은 약을 잘만 복합해서 쓰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최대 50%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이 정도 효과를 능가할 약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최근 개발되는 약은 주사제로 편의성을 개선한 것들인데, 여전히 경쟁이 쉽지 않다. 얼마 전 6개월마다 한 번 주사를 맞으면 (콜레스테롤이 조절) 되는 의약품이 개발됐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

강 교수는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스타틴 계열' 약물에 대한 설명에 꽤 긴 시간을 할애했다.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허가받은 '스타틴'은 MSD가 1987년 개발한 로바스타틴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스타틴은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 산쿄의 엔도 아키라 박사가 1973년 개발한 메바스타틴이라고 한다. 하지만 엔도 아키라가 발견한 약물은 부작용 우려로 외면 받았다고 한다.

스타틴을 가장 먼저 개발한 엔도 아키라 박사. /NHK 캡처

이후 미국 텍사스대학의 마이클 브라운 박사와 조셉 골드스타인 박사는 1985년 '스타틴'에 대한 학문적인 기반을 제공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을 '콜레스테롤계의 페니실린을 개발한 엔도 아키라에서 영광을'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두 사람은 1970년대 초반 LDL 입자의 해체와 LDL 수용체의 세포 내 트래픽을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강 교수는 "1985년에 노벨상을 탄 약물을 2022년에도 쓰고 있다"며 웃었다.

一그러고 보면 고지혈증 분야는 과감하게 연구를 하는 바이오 기업들이 없는 것 같다.

"'스타틴 계열 약물'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리피토(성분명: 아토르바스타틴)인데, 임상을 쌓는 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그 후에 새로운 스타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연구가 마무리된 것도 2010년 무렵이다. 그 시점에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약값이 떨어졌다. 수십년을 사용해 안전성이 입증되고, 비용도 저렴하니 (경쟁자가 있을 수 있겠나.) 물론 새로운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 치료제의 기전을 활용한 비만 치료제도 나오고 있지 않나."

一윤석열 정부가 의료 제약 바이오 산업 육성을 내세웠다. 조언한다면.

"정부 정책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확실히 했으면 좋겠다. 예컨대 현 정부 5년 안에 성과가 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10~20년 장기적인 성과를 염두에 둔 것인지 구분해야 세부 전략도 달라질 수 있다. 또 정책 아젠다에 부합하는 전문가를 모시기를 기대한다. 대부분의 과거 정부는 그 시점에 시간이 되는 '편한' 전문가를 데리고 쓴다. 그런 전문가들만 만나다 보면 서로 비슷한 생각에 매몰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듣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시적으로 간담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1조원 규모의 메가펀드 운영하려고 금융전문가를 모으는 것처럼, 의료 전문가나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거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