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치매 의심환자 A씨는 다음 달부터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들어간 대표 상품 B캡슐을 사기 위해 기존 약값의 2배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B캡슐의 가격은 1개당 506원이다. 한 박스에 캡슐 90개가 들어있어 총가격은 4만5540원인데 기존엔 약값의 30%인 1만3662원만 환자가 부담했다. 그런데 오는 9월부터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쓰인 약의 급여가 축소되면서 약값의 80%인 3만6432원을 환자가 지불해야 한다. 다른 약품으로 대체하기도 쉽지 않다. 뇌기능개선제 주요 성분인 아세틸엘카르니틴은 시장에서 퇴출당할 확률이 높고 옥시라세탐도 치매 개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1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 초 뇌기능개선제 ‘아세틸-엘-카르니틴’ 제제에 대한 처방·조제 중지를 권고하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식약처는 서한을 통해 “임상 실험 결과 제제가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이번 조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이 조치에 대한 업체들의 이의신청이 없으면 오는 9월에 아세틸엘카르니틴 제제에 대해 허가취소를 할 예정이다. 허가취소 이후엔 이 제제가 들어간 약품을 생산·판매할 수 없다.

다른 뇌기능개선제 제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경우엔 다음 달부터 급여 범위가 축소돼 환자의 약값 부담률이 기존 30%에서 80%까지 오를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제약사들이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7월에 패소했다. 옥시라세탐 제제는 치매 증상에 대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는 혈관성 인지 장애 증상 개선에 대한 임상 재평가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상인의 뇌(왼쪽)와 치매 환자의 뇌.

강남구약사회 한 관계자는 “뇌기능개선제는 예방 차원에서 먹는 만큼 치매를 확실하게 판정받지 않은 환자도 많이 복용해왔다”며 “그러나 이번에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급여 비율이 낮아지면 환자 부담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성분도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커 환자들의 선택지도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학교 신경과 교수는 “뇌기능개선제를 복용하고 증상이 개선됐다는 환자들이 많다”며 “지속해서 찾는 이들이 있을 텐데 기능제의 선택 폭이 좁아지고 약값도 오르면 환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병원에서도 환자에게 처방 불가 이유를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 만큼 진료 시간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식약처는 환자들이 겪을 불편을 알고 있지만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을 소비자들이 사용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며 “다만 아세틸엘카르니틴의 경우엔 제약사들의 이의 제기를 통해 실효성이 입증되면 이번 조치를 철회할 수 있다”고 했다.